2008년의 남은 이야기들-2
inamigination 2008/12/30 22:28
혼.자.만.의.시.간.
어제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이사회 PT준비를 모두 마쳐 화일을 웹하드에 올리고 난 시각은 오후 4시가 넘어서였다.
드디어!!!! 2008년 내게 주어졌던 일들을 모두 마쳐 한 해의 막을 내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어제까지가 마감인 4학년 시각환경디자인 평가도 모두 끝냈고,
내가 맡은 대학원 시각디자인론 강의안을 영문으로 만들어 보내달라던 교학과의 요청도 모두 마쳐서 보냈으니,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된 것이다.........라고 혼자서 환호하려던 바로 그 순간 메일이 한 통 들어왔다.
우리가 맡아서 진행했던 봉은사 TI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판전> 잡지에 싣고 싶다는 원고(15-17매나 되는) 청탁의 메일이었다. 메일을 확인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최광 교수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대학원 웹사이트건이 분명했다.
아.. 진정 내게 한 해의 끝은 오지 않을 셈이로구나..라는 실망감에 도무지 전화를 받을 용기가 나지 않는데,
조금 있으니 이번에는 대학원 원장님으로부터의 전화이다. 이번에도 바로 받을 용기는 없었지만 대학원 웹사이트건에 대한
독촉이 목적이라는 것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제발.. 나에게도 '끝'이란 게 필요하다구. 그래야 코 앞으로 다가온 새로운 해의 '시작'이라는 걸 할 수 있는 거잖아...
하지만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도망을 갈 수는 없는 일이니 잠시 마음을 다스려 냉정을 찾는다.
가만. 봉은사 원고는 1월 5일까지잖아. 촉박하기는 하지만 내년으로 미루면 될 일이야. 내년 일은 내년에 생각하면 되고.
(자, 됐지? 한 개 패스.)
다음. 대학원 웹사이트건은 작업을 맡아 진행하는 상용씨에게 전화를 하여 상황을 정리한 후 최광 교수, 대학원 원장님 순으로
전화를 드린다. 전화 못받았어요..웹사이트는 방학을 이용해서 1월 중에는 모두 끝낼 생각입니다. 염려치 마세요...
(자, 이것도 내년에 생각하자고.. 또 한 개 패스.)
휴. 잠시 가슴을 꽉 조여왔던 상황을 모두 정리하고 나니 이제야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되었다.
이제는 정말 그 무엇도 사양이다. 2008년 내게 남은 날들을 방해하는 그 무엇도.
나의 자유를 확인하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는 서둘러 책상 앞을 벗어나기로 했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벗어날 것을 결정하기는 이르다. 은감독님으로부터 뭔가 요청사항이 있을지도 모르고
다시 살펴보다 오타가 있으면 이를 수정할 수도 있어야 한다. 책상 앞을 벗어나기는 하되 나는 노트북과 동행할 것을 결정한다.

홍대 앞 스타벅스. 파워를 연결할 수 있는 코너 자리가 마침 비어 있다.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커피를 마시며 구경하는 거리의 활력은 눈과 머리를 한결 여유롭게 한다.
(창밖을 지나며 창가에 앉아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물론 꽤 볼거리가 된다는 것을 안다.)
여유를 가지고 찬찬히 화일을 들여다 보니 제법 잘 정리가 된 PT자료이다. 마음을 놓아도 좋을 것 같다.
자.. 이제는 정말 일이 아닌 놀이를 계획해 보자.
일단 '번개'의 가능성을 생각해본다.
집에서 입던 차림으로 그냥 나온 길이니 부담스러운 만남이 되지 않을 번개는... 하고 생각하다가는
합정동 상암동 서교동..주민이신 나건 교수님과 김승현 부장님을 떠올리고는 번개 문자를 넣어본다.
별일 아니고, 집에 들어가시는 길에 잠깐 맞는 번개가 된다면 모두에게 즐거운 일이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하지만, 번개가 성사되면 혼자만의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26일부터 29일까지 남편은 해외출장, 수빈은 Dream Girls 뮤지컬 일로 자정을 넘겨 귀가하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어
내심 한 해의 마지막 날들을 이용한 여유로운 '혼자만의 시간'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결코 여유롭지 못했던 이유로 나의 기대와는 거리가 먼 혼자만의 시간이 되고 말았으니
이제부터 남은 몇시간이야말로 고대하던 혼자만의 시간에 대한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잠시 후 번개를 통한 오늘의 스케줄에 대한 베팅은 판가름이 났다.
기러기 아빠인 나건 교수님은 방학을 맞아 가족들을 만나러 미국으로 가셨고,
김승현 부장님은 31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기획안 작성으로 골치 아픈 숫자놀음 중이라 하였다.
자. 이젠 결정이 되었다.
고대하던 혼자만의 시간이 막 시작되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