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슈밍'의 괴로움
inamigination 2008/08/13 12:18 원하던 원하지 않던 프로슈밍(pro-suming)의 체제가 우리 삶의 구석구석을 지배하는 시대가 되었다.
'프로슈밍'이란 'producing(생산)'과 'consuming(소비)'을 아우른 개념으로,
이윤을 추구하지 않는 경제활동으로 자신의 만족을 위해 서비스, 또는 경험을 생산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할 것이라는 새로운 소비행동패턴에 대한 앨빈 토플러의 미래예측을 담고 있는 말이다.
소비자의 이 '생산적인 소비행위'를 생산자의 입장에서 뒤집어 말한다면
소비자를 자연스럽게 생산에 참여시킴으로 엄청난 '생산비용' 및 '홍보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즉, 소비자의 프로슈밍 행위를 잘 부추기면 엄청난 금액의 생산원가를 절약할 수 있다는 뜻으로,
바로 앨빈 토플러가 말하던 '부의 미래'가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 4-5년 사이 프로슈밍이라는 사회현상이 디자이너인 나에게 미치는 영향은 매우 직접적이 되었다.
국내, 국외를 막론하고 디자인 관련 분야의 '포텐셜 콘텐츠 제공자'들의 프로슈밍을 전제로 한 수많은 잡지, 책,
전시 등이 기획되어 그들을 위한 '자발적 프로슈머'의 하나로 발탁되는 일이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양한 질문을 보내와 답을 달아줄 것은 물론, 디자인 작업물들의 고해상 사진들을 제공해달라거나
각각에 대한 설명글 등을 준비하여 보낼 것을 요청하고는 마감시간에 대한 압박을 가해오기조차 한다.
그러면 나는 어느 사이엔가 빚 독촉에 쫓기는 신세가 되어 그들을 위해
기꺼이 나의 경험과 시간을 제공하는 입장에 놓이게 된다.
마감시간을 맞추지 못한 것에 대해 몹시 미안한 마음이 되기까지 하여.
이 모든 것을 전통적 개념의 '생산행위'에 대입해 본다면
이는 모두 생산자의 비용 및 시간을 투자하여 '생산해 내어야 할' 업무가 분명하다.
(취재원을 만나 취재를 하고 사진을 찍고 글을 정리하는 등의 기자의 업무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어느 순간엔가 '소비자의 자발적인 프로슈밍 행위'로 이양되어버린 것이니
나도 모르는 사이 나 스스로가 생산자를 위해 기꺼이 '생산적 소비행위'에 참여하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지난 주부터 독촉을 받아온 어느 잡지사의 단행본 기획에 따른 '작품에 대한 글'을 쓰는 일로 어제 오늘 내내 쫓기는 마음이다.
나의 자발적인 의지가 아님에도, 오늘날 이미 공공연해져버린 프로슈밍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이토록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원하던 원하지 않던, 이 프로슈밍의 행위가 결국은 나와 바프의 작업을 널리 홍보하는 역할을 대신해줄 것이라는
프로슈밍 시대의 '잠정적 거래'를 모르지 않기에.
'프로슈밍'이란 'producing(생산)'과 'consuming(소비)'을 아우른 개념으로,
이윤을 추구하지 않는 경제활동으로 자신의 만족을 위해 서비스, 또는 경험을 생산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할 것이라는 새로운 소비행동패턴에 대한 앨빈 토플러의 미래예측을 담고 있는 말이다.
소비자의 이 '생산적인 소비행위'를 생산자의 입장에서 뒤집어 말한다면
소비자를 자연스럽게 생산에 참여시킴으로 엄청난 '생산비용' 및 '홍보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즉, 소비자의 프로슈밍 행위를 잘 부추기면 엄청난 금액의 생산원가를 절약할 수 있다는 뜻으로,
바로 앨빈 토플러가 말하던 '부의 미래'가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 4-5년 사이 프로슈밍이라는 사회현상이 디자이너인 나에게 미치는 영향은 매우 직접적이 되었다.
국내, 국외를 막론하고 디자인 관련 분야의 '포텐셜 콘텐츠 제공자'들의 프로슈밍을 전제로 한 수많은 잡지, 책,
전시 등이 기획되어 그들을 위한 '자발적 프로슈머'의 하나로 발탁되는 일이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양한 질문을 보내와 답을 달아줄 것은 물론, 디자인 작업물들의 고해상 사진들을 제공해달라거나
각각에 대한 설명글 등을 준비하여 보낼 것을 요청하고는 마감시간에 대한 압박을 가해오기조차 한다.
그러면 나는 어느 사이엔가 빚 독촉에 쫓기는 신세가 되어 그들을 위해
기꺼이 나의 경험과 시간을 제공하는 입장에 놓이게 된다.
마감시간을 맞추지 못한 것에 대해 몹시 미안한 마음이 되기까지 하여.
이 모든 것을 전통적 개념의 '생산행위'에 대입해 본다면
이는 모두 생산자의 비용 및 시간을 투자하여 '생산해 내어야 할' 업무가 분명하다.
(취재원을 만나 취재를 하고 사진을 찍고 글을 정리하는 등의 기자의 업무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어느 순간엔가 '소비자의 자발적인 프로슈밍 행위'로 이양되어버린 것이니
나도 모르는 사이 나 스스로가 생산자를 위해 기꺼이 '생산적 소비행위'에 참여하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지난 주부터 독촉을 받아온 어느 잡지사의 단행본 기획에 따른 '작품에 대한 글'을 쓰는 일로 어제 오늘 내내 쫓기는 마음이다.
나의 자발적인 의지가 아님에도, 오늘날 이미 공공연해져버린 프로슈밍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이토록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원하던 원하지 않던, 이 프로슈밍의 행위가 결국은 나와 바프의 작업을 널리 홍보하는 역할을 대신해줄 것이라는
프로슈밍 시대의 '잠정적 거래'를 모르지 않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