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로부터의 선물
travelog 2008/08/29 13:52
삼성 사외보 9-10월호의 테마인 '여행의 발견, 삶의 발견'의 기획을 위한 여행 아이템 리서치를 하던 중
<이스탄불로부터의 선물>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내가 쓴 책이다.
각종 신문에 실린 북 리뷰, 온라인 서점과 블로거들에 의해 포스팅 된 리뷰들이었는데
책이 나온지 9개월이 다되어 가는 지금에서야 내 눈에 뜨인 걸 보면 나도 참 어지간히 무심했다.
2005년 가을, 우연한 계기로 안그라픽스의 제안을 받아 <프라하에서 길을 묻다>라는 여행기를 냈고,
2007년 겨울, 다시 안그라픽스를 통해 두번째 여행기를 낸 것이 바로 <이스탄불로부터의 선물>이다.
나로서는 일상의 디자인 업무를 잠시 떠나 온전히 나만의 감수성에 의존하여
그것을 표현하는 일에만 몰두할 수 있었던 너무도 행복했던 프로젝트였다.
책으로 꾸미는 과정에는 지혜씨가 디자인 진행을 맡아 터키의 화려한 북장정을 연상케 하는
멋진 '고서(antique book)'의 분위기를 연출, 나의 의도를 백분 충족시켜 주었는데,
안타깝게도 인쇄 상태가 기대에 못미쳐 무척이나 마음이 아팠던 책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숨은 곳에서 조용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니
미안한 마음에 또 한번 가슴 언저리가 뻐근해진다.
책은 자식과도 같은 건데, 부모의 욕심과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자식을 덜 사랑할 수는 없는 건데...
<이스탄불로부터의 선물>에 사죄하는 마음으로 예쁘게 사진을 한 장 찍었다.
그리고, 이스탄불이 내게 선물하였던 그 특별했던 여행의 한 순간을 추억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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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이들의 클럽 문화와 함께하는 터키의 전통음악 ]
저녁 9시. 우리는 사다르와 함께 호텔을 나선다. 사다르는 키벨레 호텔의 종업원으로 아침저녁으로 인사를 주고 받다가 친해진 사이이다. 오늘은 사다르가 비번인 저녁이고 이스티크랄 거리의 클럽으로 우리를 안내하기로 하였다. 하루 동안 두 번이나 방문하게 되는 이스티크랄 거리의 밤의 풍경은 어떠할지 기대가 된다.
또래의 젊은 남자를 따라 나서는 저녁 외출인지라 딸은 나름대로 멋을 부린 흔적이 역력하다. 가슴이 깊이 파인 원피스 같은 것을 여행가방에 넣어왔을 때부터 기대하였던 그런 시간이 바로 오늘과 같은 저녁일 것이다. 나도 여행가방 속에 들어있던 옷과 소품들을 이용하여 나름대로 멋스러운 차림을 만들어보려 고심하던 중 여행 내내 소지하던 검정 리넨 스카프를 숄처럼 어깨에 둘러 늘어뜨리니 제법 모양이 난다. 환절기의 변덕스러운 날씨에 목을 보호하기 위해 칭칭 두르고 다니던 스카프가 사원에 들어갈 때는 이슬람 여인들처럼 머리를 가릴 수 있어 그 효과적인 쓰임새에 내심 흡족하였는데 이번에는 저녁나들이를 위한 멋진 패션 소품으로 그 쓰임새가 또 한번 빛을 발한다.(짐이 되지 않도록 심사숙고하여 챙겨온 물건이 이처럼 일석다조의 가치를 발휘할 때 여행자는 스스로의 선택에 매우 흡족해진다.) 이에 더하여 가방을 뒤져 찾아낸 화려한 구슬 귀걸이를 이용하니, 이스티크랄의 밤거리에 젊은 남자를 따라나서기 위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춘 차림이 되었다.(그런데 그 귀걸이는 웬일로 내 여행가방 속에 들어가 있던 걸까.)
이스티크랄 거리에서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니 아까 낮에 지나갔던 어시장이 들어서 있는 길인데 밤 시간을 즐기려는 인파로 아까와는 사뭇 다른 활기가 느껴진다. 다시 코너를 돌아 골목 안으로 들어서니 낡고 우중충한 건물의 입구에 ‘araf’라는 이름의 간판이 보인다. 어른들의 시각으로 상상하자면 뭔가 부적절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비밀장소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낯선 도시를 여행하는 여성의 경계심으로 상상하자면 들어갈 때는 제 발로 들어가도 나올 때는 그렇지 못할 것 같은 그런 수상쩍은 분위기의 입구이다. 하지만 간결하게 디자인된 쿨한 느낌의 네온사인은 이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스타일을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이곳은 바로 젊은이들의 아지트인 것이다.
홍대 앞의 클럽들이 그렇듯 젊은이들의 문화는 설익은 호기심으로 물을 흐리는 어른들을 따돌릴 수 있을 만한 곳에 둥지를 튼다는 사실을 새삼 상기해 본다. 호텔의 나이트클럽이나 청담동의 술집들과는 다른, 젊은이들만의 ‘무엇’이 있는 것이다. 허름한 겉모습 속에 자기들끼리만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을 숨겨두고 그 안에서 어른들이 참견할 수 없는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삶을 즐기려는 것이다.
젊은이들의 아지트는 별 돈을 들이지 않고도 자기들만의 감각과 스타일로 멋을 낸 공간이며, 돈으로 절대 살 수 없는 젊은이들만의 열기가 있는 공간이다. 화려한 인테리어에 숨겨져 있는 비싼 술값을 감당하면서도 돈 많은 부류들과 어울림으로써 스스로의 사회적 체면을 확인하기 위한 어른들의 장소가 아니라 맥주 한 잔 값으로도 밤새도록 자신들의 열기를 발산할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젊은이들의 놀이문화가 피어나는 클럽인 것이다.
클럽이 있는 층으로 데려다주는 엘리베이터는 딱 세 사람이 정원이다. 엘리베이터 안의 거울벽을 이용하여 우리 셋을 함께 사진에 담아볼까 하다가 너무 어두워 포기하려는데 사다르의 기발한 농담이 또 우리를 즐겁게 한다. It’s not too dark because I’m shiny. 오늘 밤 두 레이디를 에스코트하고 있는 자신에게서는 빛이 나고 있을 터이니 사진을 찍기에 결코 어둡지 않을 것이라는 그의 말… 터키 남자들의 이런 예쁜 농담은 도대체 어디서 생겨나는 것일까.
실내는 어둡고 담배연기마저 자욱하여 누가 누구인지가 별로 상관없이 모두가 저마다의 분위기에 빠져들기에 안성맞춤이다. 천정으로부터 늘어뜨린 몇 개의 커다란 등 이외에는 별다른 장식이 없는 소박한 곳이지만 이곳을 가득 메운 손님들을 보면 젊은이들 사이에 예사롭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곳임을 짐작할 수 있다. 테이블마다 손님이 가득 차서 우리는 친구끼리 온 듯한 젊은 여자 둘과 테이블을 나누어 앉도록 안내를 받는다. 사다르는 라크를, 나와 딸은 각기 맥주와 칵테일을 한 잔씩 주문하고는 주위를 살피니 홀의 한쪽에는 자그마한 무대가 마련되어 있다. 바로 사다르가 말한 ‘Turkish music’ 공연이 이루어지는 무대인 듯 하다.
이스탄불의 젊은이들이 모이는 클럽에서는 어떤 음악을 주로 틀까… 이런 나의 질문에 대한 사다르의 대답은 놀랍게도 터키의 전통음악이었다.(이와 같은 대답은 사실 사다르 이외에 또 다른 곳에서 들은 바 있다.) 설마 하는 생각에 재차 확인을 하여도 그건 홍대 앞의 클럽을 장악하고 있는 하우스나 힙합, 또는 일렉트로니카가 아닌 터키의 전통음악이라는 것이니 그것이 과연 어떻게 가능한지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 오늘 밤 클럽 나들이를 계획하게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대 위에는 4인조로 구성된 악사들이 등장을 하는데 악기의 구성에서 이미 이들의 음악이 터키의 전통음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악기로 비교하자면 해금같이 생긴 악기와 모양은 대금 같은데 부는 방식은 오보에나 클라리넷과 같은 악기, 작은 퍼커션 악기가 하나, 여기에 만돌린같이 생겼는데 크기는 만돌린과 기타의 중간 정도 되는 듯한 악기가 하나 더해진 조합이다.
전통음악이라니… 대다수의 ‘국민이 잘 알지 못하는 음악이 바로 국악’인 우리의 형편으로 보자면, 사라져가는 자신들의 근본을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으로 이를 되살리기 위한 젊은이들의 기특한 노력이 투자되는 일이 가끔 있을 뿐 대부분의 경우는 자주 접할 수조차 없다. 그러니 당연히 자신들과는 관계가 없는 음악이라고 생각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에게 있어서는 이처럼 젊은이들이 만들어놓은 자기들만의 놀이공간 안에 기꺼이 들여놓은 음악이 바로 전통음악이라니… 그렇다면 놀이를 위한 장소에서 가장 신명나게 그들의 흥을 돋구어주는 음악이 바로 그들의 전통음악이라는 이야기가 아닌가.
귀로 들어오는 음악을 있는 그대로 느끼기에 나의 머릿속은 전통음악에 대한 그간의 생각들을 앞뒤로 꿰맞추고 정리하는 일로 분주하다. 그 사이 이들의 전통음악은 자연스럽게 클럽 안의 젊은이들을 하나 둘 플로어로 이끌어내고 있다. 플로어라고 할 것까지도 없는 작은 홀 중앙의 공간으로부터 테이블 사이사이의 모든 공간은 이내 기다려왔던 순간을 즐기려는 젊은이들로 가득 메워진다.
정말? 이게 정말 전통음악이란 말이야? 전통으로부터 일부분을 빌어와 만든 정도겠지… 나의 질문에 사다르의 대답은 명쾌하다. It’s traditional. People played this music for Sultan. 글쎄, 자기들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듣던, 심지어는 왕이 듣던 음악이라니 전통음악이 틀림없기는 한 것 같은데… 그런데 그 전통음악이 클럽의 댄스뮤직으로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니 이건 나에게 대단한 문화적 쇼크가 아닐 수 없다. 이곳의 젊은이들은 유럽이나 미국, 또는 일본의 클럽에서 유행하는 최신 컬렉션의 하우스뮤직 같은 게 아니어도 괜찮다는 거야? 설마… 나는 전통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이 혹 이곳 젊은이들 사이에 최근 유행하기 시작한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일시적 현상이 아닐까를 한번 더 꼼꼼히 의심해본다.
테이블 건너편의 젊은 여자 중의 하나는 적극적이고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인 듯 의자에 앉은 상태에서 만들어내는 손짓, 목과 어깻짓이 그대로 춤이 된다. 그런데 그녀가 만들어내는 몸짓들이 그들의 전통 무용인 벨리댄스를 흉내낸 동작임을 가늠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리고 당연히, 그녀의 몸짓은 클럽 안을 가득 달군 음악 속에 녹아들어가 한 덩어리를 이룬다. 사다르는 우리를 중앙의 플로어 쪽으로 이끌며 함께 춤출 것을 권한다. 그리고는 자신도 악사들의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그 발동작이 언젠가 텔레비전을 통해 보았음직한 어느 문화권의 전통무용 속 남자 역할의 춤과 닮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훌라춤처럼 빠른 동작으로 엉덩이를 흔들 때마다 짧은 미니스커트 자락이 음악에 맞추어 경쾌하게 요동을 치는 춤도 있고, 제자리에 서서 어깨와 목, 손의 섬세한 동작에만 집중하는 식의 춤도 있다. 커플이 서로 몸을 부딪혀가며 흥을 돋구는 춤도 있고 비좁은 대로 원을 이루어 한 사람씩 가운데로 나서면서 특별한 동작을 선보이는 춤도 있다. 전통으로부터의 동작을 포함하여 모두가 다양한 방식으로 저마다의 춤을 추는 것이다.
I like nostalgic. 아마도 사다르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는 그들의 음악 속에 담긴 막연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애잔함을 지칭하는 것이라 이해가 된다. 그들의 음악은 빠르고 경쾌하나 단순히 즐겁고 신나기만 한 것이 아니다. 빠르고 경쾌한 리듬의 저변으로 간간이 단조를 넘나드는 애조 띤 선율이 흐르는 것이 집시의 음악을 닮았다. 떠돌이 삶의 애환을 서로 다독이는 마음으로 하나가 되어 즐기기 위한 음악인 것이다.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이 순간뿐.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 있어 무언가를 보고 듣고 느끼며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만이 우리가 삶을 통해 축배를 들 수 있는 유일한 사실인지도 모른다. 오늘 밤 저마다의 운명에 의해 이곳에 함께 모인 이들- 그들을 따라 나도 내 몸이 움직이고 싶어하는 대로 흐름을 타며 춤을 추니 어느새 그들의 음악은 나의 음악이 된다. 음악과 더불어 나도 그들과 한 덩어리가 된다.
어느새 12시가 넘고 클럽 안의 열기는 점점 고조되어 간다. Hassan is coming. 저녁 당번이었던 하산이 일을 마치고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 근처로 오는 중이라고 한다. 글쎄… 좀 피곤하긴 하지만 또 다른 클럽의 분위기는 어떠할지, 또한 여전히 ‘의심’의 눈길을 거두어들이지 못한 ‘전통음악과 클럽문화’와의 관계에 대한 호기심에 사다르의 ‘2차’ 제의를 수락한다. 딸은 점점 분위기가 기대하였던 대로 되어가는 것에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실내를 가득 메운 사람들 사이로 가까스로 틈을 만들어 ‘araf’를 빠져나와 2차로 간 클럽은 ‘LINE’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헬베티카 계열의 스트레이트한 서체를 이용한 L.I.N.E.라는 네 글자 중 ‘I’만을 사선으로 기울여 녹아내리는 듯한 유선형의 커브를 적용한 로고가 마음에 든다. 그리고 실내에 들어서면서 홀의 중앙에 시선을 잘 집중할 수 있도록 꾸며진 무대와 그 위의 악사들을 보면서 그 로고가 의미하는 바가 현악기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4중주로 구성된 악기 중 첼로의 사이드뷰가 바로 그 ‘I’와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첼로 이외에 바이올린과 기타를 닮은 악기, 그리고 아까의 클럽에서 보았던 퍼커션 악기와 함께 4중주를 이루어 이들이 연주하는 음악은 여전히, 팝뮤직이 아닌 전통음악이다. 전자악기가 포함되지 않은, 켜고 타고 퉁기고 두드려 소리를 내는 순수한 악기음으로 만들어내는 음악인 것이다.
하산은 그리스에서 온 두 명의 소녀들을 에스코트하고 있었는데, 이스탄불을 여행하기 위해 온 학생들이라고 소개를 한다. 관광객이긴 하지만 우리와는 달리 이곳의 문화가 자기들의 문화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은 듯 클럽에서 연주되는 음악에 대한 그들의 반응 역시도 우리와는 매우 다르다. 오늘 밤에 연주되는 음악은 바로 자기 나라의 클럽에서 듣던 자기들의 음악이라며 반색을 하며 기뻐한다. Ladies, this is Gipsy music. 하산의 부추김에 따라 우리는 모두 플로어로 나서 집시의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춘다.
터키와 그리스는 지중해 연안에 위치하며 국경을 공유하고 있는 두 나라일 뿐만 아니라 종교·문화·역사적으로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이것은 그리스의 음악인 동시에 터키의 음악인 것이며, 터키와 그리스를 떠도는 집시들에 의해 연주되는 집시들의 음악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통으로부터의 음악이 터키나 그리스의 클럽에서 사랑받는 현대의 젊은이들을 위한 음악이기도 하다는 점이 그들에게는 동질감을, 내게는 이질감을 선사한다. 내게 낯설고도 부럽기만 한 그들의 그 동질감은 이 세상 어느 부자 나라의 국민보다도 그들을 풍요로운 문화적 배경을 지닌 국민들로 만들어준다.
클럽에서의 열기 가득한 시간을 뒤로한 채 이스티크랄 거리를 되짚어 돌아오는 길. 사다르는 늦은 밤 두 레이디들의 에스코트를 책임진 신사의 자세를 잊지 않으며 자신의 양쪽 팔을 둥글려 우리에게 권한다. 이에 딸과 나는 우리 둘 사이로 파고든 사다르의 양쪽 팔짱을 나누어 끼며 즐거이 신사의 보살핌이 필요한 우아하고 연약한 레이디들의 역할을 자처한다. 세 사람이 나란히 한 덩어리를 이룬 그림자를 밟으며 우리는 오래된 친구처럼 친근한 대화를 나눈다.
집은 어디야? 딸의 질문에 사다르는 뭔가 기대가 되는 농담을 시작한다. I have no home. But, I am not homeless. I am homeful. 역시나… 그의 농담은 결코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homeful’이라니,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표현일 뿐만 아니라 ‘home-less’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home-ful’이라는 개념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나는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집이라는 것을 ‘건물’에 한정하지 않으려는 그의 생각은 하늘과 땅으로 이어지는 곳이라면 어디든 그의 집이 될 수 있다는 젊은이다운 멋과 여유로 나를 감동시킨다.
오늘 밤 사다르는 마치 어린 동생처럼 나를 돌봐주고 나를 일깨워준다. 나도 이 멋진 터키 청년이 든든한 오라버니처럼 느껴져 푸근히 그의 팔에 의지하고 싶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