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영화 버전의 '맘마미아'의 OST가 집으로 배달되었다.
지난 주 영화를 본 후 뭔가 가슴 찡한 부분이 있었던 듯 남편이 인터넷으로 주문을 한 것이다.
CD 플레이어에 음악을 걸며 남편이 불쑥 묻는다.
메릴 스트립이 결혼식 전날 딸내미 머리 빗겨주면서 부르던 노래.. Slipping through.. 그거.. 맞지?
그거 보면서 뭐 특별하게 생각나는 거 없었어?
하도 의외의 질문이라 어안이 벙벙해서 거꾸로 무슨 특별한 생각이 나더냐고 남편에게 물으니
애 학교 갈 때.. 그런다.
참, 나..
작년 여름 뉴욕 여행 중 셋이서 브로드웨이 뮤지컬 '맘마미아'를 보러 갔을 때
내가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도 멀뚱멀뚱 하더니, 이게 웬 뜬금없는 감정의 변화란 말인지.
일년 사이 부쩍 늘어난 남편의 여성 호르몬 수치를 의심해볼만 하다.
Slipping Through My Fingers..
영화에서 엄마역을 맡은 메릴 스트립이
어느새 성장하여 결혼을 하는 딸과 마지막 하루를 보내며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버린 듯한 지난 세월에 대한,
미처 못다 나눈 딸과의 사랑에 대한,
아쉬움을 노래하는 내용이다.
남편이 그랬듯, 나 역시도 딸을 처음 초등학교에 보낼 때의 생각이 난다.
엄마, 학교 다녀오겠습니다아~ 하며 집을 나서는 어린 딸의 조그만 어깨, 조그만 뒷모습을 보며
만일 오늘 저녁 다시 아이를 볼 수 없다면..? 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면서 험한 세상에 아이를 홀로 내놓는 엄마의 심정에
지금 저 대문 밖을 나서는 아이의 모습이 내가 마지막 보게되는 모습은 아닐지,
아침마다 마음 속으로 비장한 각오를 하고, 또 하던 시절이 생각 난다.
말로는 사랑한다 하면서도 정작 나는 늘 내 일을 위해 나의 하루를 온전히 내주어야 했으므로
딸은 늘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하루하루를 개척해 나가야만 했던 시간들...
그렇게 보낸 시간이 어느새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긴 세월이 되어버렸다.
중학교 졸업식날 딸은 전날 밤 젖은 머리를 꽁꽁 땋아 만든 '웨이브'로 한껏 멋을 내고
여자로서 성숙을 더해갈 미래에 대한 꿈을 가슴에 품으며
소녀시대를 마감할 마지막 퍼포먼스를 위해 교탁 위로 뛰어 올랐다.
그리고는, 단체기합으로 엉덩이를 맞다 꼬리뼈를 다쳐 중3 일년간을 고생했던 흔적-
아빠에게 부탁을 해 특수제작을 한 구멍뚫린 의자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참으로 미안하게도 나는 딸이 수없이 정형외과에 치료를 다닐 때 단 한번도 동행을 해주지 못하였다.)
그렇듯 딸은 무엇이든 스스로 해결할 수 밖에 없었으며, 고맙게도 늘 그러려니 하며 씩씩하게 자라 주었다.

세월이 지나 어느덧 대학생이 된 지금도 딸은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을 당해도 변함없이 씩씩하다.
얼마 전 가나자와로 가족여행을 갔을 때 계단 모서리에 발가락을 찧어 발톱이 빠지는 사고를 당하였음에도
딸은 붕대를 칭칭 감은 발가락에 신발을 신을 수 있도록 스스로 특단의 조치를 취하였는데
그 모습이 너무도 기발하고 거침이 없어 보는 사람 모두에게 걱정대신 즐거움을 선사해주었다.
가위로 앞부분을 도려내어 샌들로 급조를 한 신발을 신고 거리를 활보하며
예정하였던 계획을 모두 차질없이 마칠 수 있게 하였던 그 씩씩한 마음,
일본어 전자사전을 뒤져가며 약국에서 '소염제'를 찾아내던 그 기특한 모습은
아마도 딸의 결혼식 전날에 떠올리게 될 또 하나의 미안하고도 사랑스러운 추억의 장면이 될 것 같다.


맘마미아의 OST를 듣던 남편이 또 불쑥 말을 던진다.
난 이제부터 수빈이가 사달라는 건 뭐든지 다 사줄거야.
Slipping through fingers.. 지나가면 다 소용없어. 있을 때 잘해야지..
오늘 남편은 거금 70만원을 선뜻 지불하며
딸이 그간 원하였던 18-200mm짜리 카메라 렌즈를 샀다.
몇시에 들어올거냐고, 딸에게 두번, 세번도 더 전화를 하며
딸이 기뻐할 것을 생각하며 들뜬 기분을 감추지 못한다.
생일이 아니어도, 크리스마스가 아니어도,
남편은 딸을 기쁘게 할 무언가를 선물하는 것으로
먼 훗날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버린 시간들을 안타까워하게 되지 않도록
자기 방식대로의 사랑의 마음을 표현하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