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냐에 가는 호랑이
article 2009/01/23 03:07
올 3월 23일부터 26일까지 이태리 볼로냐에서 열리는 2009 Bologna Children's Book Fair의 주빈국은 한국이다.
2007년 Frankfurt Book Fair에 이어 두번째로 유럽대륙에서 열리는 국제 도서전에 한국이 주빈국으로 초대를 받은 셈이다.
'2009 볼로냐아동도서전 주빈국' 행사에 소개할 한국의 일러스트레이터를 선정하였다고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연락이 왔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한국을 대표하는 일러스트레이터 102명의 명단에 나의 이름이 포함이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나무꾼과 호랑이 형님> 때문이다.
1988년 처음 출간되었던 <나무꾼과 호랑이 형님>은 일러스트레이터로서 나의 첫 작품집이며, 지금까지의 내 삶을 통틀어
만든 2권의 그림책 작품집 중의 하나이다. 한 권은 서울에서, 다른 한 권은 뉴욕에서 출간을 하였고 그것으로 그림책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나의 경력을 마감하였으니, 그게 벌써 15년 전의 이야기이다.
출간된지 어언 20년도 더 된 그림책으로 한국을 대변하는 그림책 작가로 볼로냐에 소개가 된다니, 참 감개무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에서 낸 단 한 권의 책으로 본의 아니게 한국을 대변하는 '작가' 행세를 하게 된 셈이니, 좀 멋적고
떳떳하지 못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나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그림을 그리지 않은지 하도 오래라, 이젠 동그라미 하나도 제대로 그리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일러스트레이터'에서 '북프로듀서'로, '디자이너'로 활동 영역을 바꾼지 오래지만,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나의 경험은 디자이너로서 나의 작업에 든든한 주춧돌이 되어주었음을 안다.
언젠가 좀더 나이가 들어 차분하고 여유로운 나만의 시간을 갖게 된다면, 글쎄.. 다시 그림책 작가로 돌아가보는 것도
꿈꾸어볼 만한 새로운 도전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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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디자인 이야기>(2005, 마음산책 출간)에 쓴 '호랑이 형님과의 질긴 인연' 이야기를 첨부해 둔다..
호랑이 형님과의 질긴 인연_
한국전래동화책 <나무꾼과 호랑이 형님>, <젊어지는 샘물>
1988년. 사이사이 가졌던 휴학기간을 모두 합쳐 도합 7년의 세월 동안 나는 원없이 아트센터 주변을 맴돌았고 드디어 대학원 과정까지를 모두 마치게 되었다.
학교를 마쳤다는 것뿐 아직 아직 모든 것이 불투명한 가운데 나의 첫 책을 출간하게 된 것은 커다란 소득이 아닐 수 없었다. 대학원 과정을 통해 나의 한국전래동화 그림책 프로젝트로 진행하였던 <나무꾼과 호랑이 형님>이 서울의 디자인하우스를 통해 출간의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그렇게 수월하게 나의 첫 책이 탄생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지만, 어떻든 가슴 두근거리는 첫 책의 탄생을 가까이서 지켜보기 위해 나는 선인세로 받은 돈으로 비행기표를 사서 서울을 방문하였다.
아직 컴퓨터가 없던 시절, 식자를 주문하여 직접 화판작업을 하고, 교정을 내고 인쇄를 한 후 양장제본을 잘할 수 있는 제본소를 찾아 제본의 과정을 모두 점검, 책이 되기 위한 절차를 모두 내 손으로 관장했다. 드디어 나는 기획에서부터 글과 그림, 디자인과 인쇄 제본의 모든 과정을 나의 일관성 있는 디렉션을 통해 탄생한 첫번째 소산물을 얻게 된 것이다.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이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깐,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이상한 일이지만 전집물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동화책을 단행본으로 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던 시절 나의 단행본 동화책 <나무꾼과 호랑이 형님>은 서점에 놓일 만한 장소를 얻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어두컴컴한 창고를 벗어나지 못한 채 쌓여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식과도 같은 나의 책이 세상으로부터 몹쓸 대접을 받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불끈 힘을 내어 호랑이 형님을 위해 보다 당당한 길을 열어주리라 마음을 먹었다.
마침 한영대역으로 제작된 책인지라 미국 시장에서라면 어떤 반응을 얻을 수 있을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나는 책을 직접 차에 싣고 LA 등지에 위치한 다양한 성격의 서점들을 직접 방문하기에 이르렀다. 일본타운의 있는 일본서점, 한국타운에 있는 한국서점, 그밖에 중소형 규모의 미국서점들과 어린이책 전문 서점 등을 차례로 방문하여 나의 호랑이 형님 책을 보여주면서 그들의 반응을 살핀 결과,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국서점에서의 반응이 신통치 않았던 반면에 일본서점에서의 반응은 그 자리에서 현찰로 20권을 선뜻 사줄 만큼 적극적이었던 것이다. 미국서점의 경우 현찰 구매는 아니지만 여타의 책들의 경우과 마찬가지로 위탁판매를 하는 데는 아무 어려움이 없다는 점도 매우 고무적이었다.
이에 용기를 얻은 나는 미국내에서 아시아권의 문화에 관련한 책을 취급하는 도서유통업체를 찾아내어 편지를 보내기에 이르렀고, 그들과 유통계약을 맺어 한국의 창고에 쌓여 있는 책의 대부분을 미국으로 보내 판매할 수 있는 길을 주선하였다.
2년여의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초판 2천 부 대부분을 미국내에서 판매하였고, 나는 내 소임을 다했다는 생각에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 하지만, 이후 재판의 여지에 대해서는 출판사에서 그다지 희망적으로 생각하지는 않는 듯하므로 호랑이 형님의 운명도 여기에서 끝이 나는 듯하였다.
그러나 1994년 호랑이 형님은 뜻밖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출판문화협회를 통하여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출품되었던 <나무꾼과 호랑이 형님>이 유럽의 대형 그림책 출판사인 오스트리아의 hpt출판사에 의해 선택되어 유럽시장에서의 판매를 위한 독일어판 제작을 주문받게 된 것이다. 독일에서 활동하고 계신 김영자 교수님의 수고로 독일어 번역이 완료되어 독일어판의 출간은 매우 순조로워 보였으나 꼭 그렇게 계산대로만 되지 않는 게 운명인 듯, 어쩐 일인지 계약이 자꾸 미루어지고 있었다. 여러 차례 담당자가 바뀌고, 커뮤니케이션에 신속함이 결여되면서 한 달 두 달 미루어지던 일이 어느새 1년 2년으로 지연되었고, 이제 없었던 일이 되어버리는 게 기정사실로 여겨지려는 즈음 hpt출판사에서 직접 사람이 서울을 방문하여 나를 만나기를 원한다는 전갈을 받게 되었다. 마침 디자인하우스와의 출판권 계약이 만료되는 시점이라 혹 계획이 차질이 생길까봐 저작권자인 나를 만나 그 문제를 못박아두려 했던 것이다. 어떻튼, 운명의 끈질긴 노력 끝에 98년 봄 드디어 독일어판 <나무꾼과 호랑이 형님>이 탄생을 하게 되었다.
그 해 10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 도서박람회장.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전시장을 나는 얼마나 가슴 부풀어하며 돌고 또 돌았는지 모른다. 어린이 도서만을 따로 모아놓은 전시관의 골목골목을 걸으며 나는 점점 맥박이 급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의 그리운 호랑이 형님을 어느 모퉁이에서 마주치게 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었다. 안내지도를 찾아 hpt출판사의 부스 위치를 미리 확인해둘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철저히 관객의 눈이 되어 그를 만나고 싶었다. 세계 각국의 출판사로부터 출품된 수도 없이 많은 훌륭한 그림책 중에서 나의 호랑이 형님은 스스로의 힘으로 당당히 내 눈을 사로잡을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혼자만의 힘으로 성공의 자리에 이른 자식에 대한 최대한의 존경과 애정의 표현이랄까. 어떻튼 나는 내 눈에만 유독 잘나보이는 안경 같은 걸 끼고 자식을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못난 부모는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관객이야. 나는 이 중의 어떤 책에 대해서도 아무런 편견이나 불공평한 호의를 가지고 있지 않아. 나는 철저한 제3의 눈이 되어야 해.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며 걸어가다가 다음 부스로 눈을 돌린 순간 아! 그곳에 나의 호랑이 형님이 늠름한 모습으로 나를 멈춰 세웠다. 맨 처음 주어진 자태 그대로를 조금도 흐트림 없이 표지 안에 엎드려 있는 호랑이.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 잠긴, 착하디착한 나의 호랑이……. 순간 가슴으로부터 덜컥,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였다.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급하게 멈추느라 내는 소리. 하지만, 나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잠시 눈으로만 그와 만나며, 나는 마음으로만 말하였다. 마음 약해지지 마. 너는 너 스스로가 훌륭해져야 하는 거야.
먼 발치로만 바라다보는 자식의 기특한 모습. 하지만 그가 더욱 크고 의젓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더 큰 사랑의 마음은 그에게 다가가 어깨를 보듬어 안아주는 따위의 그를 나약하게 하는 행동을 삼가게 하였다. 아주 짧고, 기쁘게, 그리고 아프게 만났던 프랑크푸르트에서의 나의 <나무꾼과 호랑이 형님>에 대한 기억은 세월이 아무리 많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자식과도 같은 나의 첫 책에 대한 기억이다.
이후로도 호랑이 형님의 운명은 끝나지 않아, 출판사가 한 차례 바뀌었고 이제는 한글판과 영문판 두 종류로 나뉘어 출간되어 각기 서울과 미국의 도서시장에 유통되고 있으며, 최초의 출간일로부터 1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간간이 한번씩 출판사로부터 인세를 지불받고 있으니 정말 깊고 끈질긴 인연이 아닐 수 없다.
호랑이 형님과의 인연은 물론 이게 전부가 아니다. 93년도에는 이 책으로 말미암아 뉴욕의 대형 출판사인 퍼트남(Putnam)을 통하여 나의 두번째 한국전래동화 그림책인 <Magic Spring>을 출간하는 행운을 얻기도 하였다.
90년도쯤 뉴욕의 퍼트남 출판사에 보냈던 나의 출간 제의서를 받아본 퍼트남의 편집자 아서 러바인(Arthur Levine)씨는, 당시에는 별다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었지만, 이후 몇 년이 지나 자신이 시니어 편집자의 역할을 맡게 되자 몇 년이 지난 일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작업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주었고, 아트센터를 통해 수소문하여 디트로이트에 살고 있던 나를 찾아내주었던 것이다. 의외의 행운을 가져다준 그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호랑이 형님에게 감사하세요. 오래 전 나의 제안서와 함께 받아보았던 그 책이 매우 인상적이었고, 그 책으로 인해 새로 나오게 될 책에 대하여도 작가에 대한 충분한 기대와 신뢰를 가질 수 있었다고, 그는 내게 말해주었다.
더이상 나는 일러스트레이터를 직업으로 삼고 있지 않으므로 그림을 그리지 않은 지는 꽤 오래되었지만 그 사이에도 <나무꾼과 호랑이 형님>과 <Magic Spring>이 나를 대변하여 한두 차례 일본에서 원화전시를 가진 적이 있고, 간간이 몇몇 출판사로부터 이후의 작업이 있다면 출간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받기도 하였다.
그래픽디자이너로, 북프로듀서로의 나의 새로운 일에 만족하고 있는 만큼 내 평생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언제고 기회가 된다면 다시 처음 호랑이 형님을 그릴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건 아마도 오래도록 가슴에 품게 될 나의 소박한 꿈이 되지 않을까 한다.
<나무꾼과 호랑이 형님> 글 재구성_이나미, 그림_이나미, 디자인_이나미, 1판(한글 영어 대역판) 디자인하우스 출간 1988, 2판(한글 영어 독어 대역판) hpt-Verlagsgesellschaft m.b.H & Co(Wien, Austria) 출간 1998, 3판(한글판, 영문판) 한림출판사 출간 1998, <Magic Spring>글 재구성_이나미, 그림_이나미, Putnam(New York, USA) 출간, 199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