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냐에 가는 호랑이

article   2009/01/23 03:07


올 3월 23일부터 26일까지 이태리 볼로냐에서 열리는 2009 Bologna Children's Book Fair의 주빈국은 한국이다.
2007년 Frankfurt Book Fair에 이어 두번째로 유럽대륙에서 열리는 국제 도서전에 한국이 주빈국으로 초대를 받은 셈이다.
'2009 볼로냐아동도서전 주빈국' 행사에 소개할 한국의 일러스트레이터를 선정하였다고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연락이 왔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한국을 대표하는 일러스트레이터 102명의 명단에 나의 이름이 포함이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나무꾼과 호랑이 형님> 때문이다.

1988년 처음 출간되었던 <나무꾼과 호랑이 형님>은 일러스트레이터로서 나의 첫 작품집이며, 지금까지의 내 삶을 통틀어
만든 2권의 그림책 작품집 중의 하나이다. 한 권은 서울에서, 다른 한 권은 뉴욕에서 출간을 하였고 그것으로 그림책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나의 경력을 마감하였으니, 그게 벌써 15년 전의 이야기이다.
출간된지 어언 20년도 더 된 그림책으로 한국을 대변하는 그림책 작가로 볼로냐에 소개가 된다니, 참 감개무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에서 낸 단 한 권의 책으로 본의 아니게 한국을 대변하는 '작가' 행세를 하게 된 셈이니, 좀 멋적고
떳떳하지 못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나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그림을  그리지 않은지 하도 오래라, 이젠 동그라미 하나도 제대로 그리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일러스트레이터'에서 '북프로듀서'로, '디자이너'로 활동 영역을 바꾼지 오래지만,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나의 경험은 디자이너로서 나의 작업에 든든한 주춧돌이 되어주었음을 안다.
언젠가 좀더 나이가 들어 차분하고 여유로운 나만의 시간을 갖게 된다면, 글쎄.. 다시 그림책 작가로 돌아가보는 것도
꿈꾸어볼 만한 새로운 도전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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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디자인 이야기>(2005, 마음산책 출간)에 쓴 '호랑이 형님과의 질긴 인연' 이야기를 첨부해 둔다..


호랑이 형님과의 질긴 인연_



한국전래동화책 <나무꾼과 호랑이 형님>, <젊어지는 샘물>

1988년. 사이사이 가졌던 휴학기간을 모두 합쳐 도합 7년의 세월 동안 나는 원없이 아트센터 주변을 맴돌았고 드디어 대학원 과정까지를 모두 마치게 되었다.
학교를 마쳤다는 것뿐 아직 아직 모든 것이 불투명한 가운데 나의 첫 책을 출간하게 된 것은 커다란 소득이 아닐 수 없었다. 대학원 과정을 통해 나의 한국전래동화 그림책 프로젝트로 진행하였던 <나무꾼과 호랑이 형님>이 서울의 디자인하우스를 통해 출간의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그렇게 수월하게 나의 첫 책이 탄생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지만, 어떻든 가슴 두근거리는 첫 책의 탄생을 가까이서 지켜보기 위해 나는 선인세로 받은 돈으로 비행기표를 사서 서울을 방문하였다.
 
아직 컴퓨터가 없던 시절, 식자를 주문하여 직접 화판작업을 하고, 교정을 내고 인쇄를 한 후 양장제본을 잘할 수 있는 제본소를 찾아 제본의 과정을 모두 점검, 책이 되기 위한 절차를 모두 내 손으로 관장했다. 드디어 나는 기획에서부터 글과 그림, 디자인과 인쇄 제본의 모든 과정을 나의 일관성 있는 디렉션을 통해 탄생한 첫번째 소산물을 얻게 된 것이다.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이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깐,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이상한 일이지만 전집물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동화책을 단행본으로 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던 시절 나의 단행본 동화책 <나무꾼과 호랑이 형님>은 서점에 놓일 만한 장소를 얻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어두컴컴한 창고를 벗어나지 못한 채 쌓여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식과도 같은 나의 책이 세상으로부터 몹쓸 대접을 받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불끈 힘을 내어 호랑이 형님을 위해 보다 당당한 길을 열어주리라 마음을 먹었다.

마침 한영대역으로 제작된 책인지라 미국 시장에서라면 어떤 반응을 얻을 수 있을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나는 책을 직접 차에 싣고 LA 등지에 위치한 다양한 성격의 서점들을 직접 방문하기에 이르렀다. 일본타운의 있는 일본서점, 한국타운에 있는 한국서점, 그밖에 중소형 규모의 미국서점들과 어린이책 전문 서점 등을 차례로 방문하여 나의 호랑이 형님 책을 보여주면서 그들의 반응을 살핀 결과,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국서점에서의 반응이 신통치 않았던 반면에 일본서점에서의 반응은 그 자리에서 현찰로 20권을 선뜻 사줄 만큼 적극적이었던 것이다. 미국서점의 경우 현찰 구매는 아니지만 여타의 책들의 경우과 마찬가지로 위탁판매를 하는 데는 아무 어려움이 없다는 점도 매우 고무적이었다.
이에 용기를 얻은 나는 미국내에서 아시아권의 문화에 관련한 책을 취급하는 도서유통업체를 찾아내어 편지를 보내기에 이르렀고, 그들과 유통계약을 맺어 한국의 창고에 쌓여 있는 책의 대부분을 미국으로 보내 판매할 수 있는 길을 주선하였다.
2년여의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초판 2천 부 대부분을 미국내에서 판매하였고, 나는 내 소임을 다했다는 생각에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 하지만, 이후 재판의 여지에 대해서는 출판사에서 그다지 희망적으로 생각하지는 않는 듯하므로 호랑이 형님의 운명도 여기에서 끝이 나는 듯하였다.

그러나 1994년 호랑이 형님은 뜻밖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출판문화협회를 통하여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출품되었던 <나무꾼과 호랑이 형님>이 유럽의 대형 그림책 출판사인 오스트리아의 hpt출판사에 의해 선택되어 유럽시장에서의 판매를 위한 독일어판 제작을 주문받게 된 것이다. 독일에서 활동하고 계신 김영자 교수님의 수고로 독일어 번역이 완료되어 독일어판의 출간은 매우 순조로워 보였으나 꼭 그렇게 계산대로만 되지 않는 게 운명인 듯, 어쩐 일인지 계약이 자꾸 미루어지고 있었다. 여러 차례 담당자가 바뀌고, 커뮤니케이션에 신속함이 결여되면서 한 달 두 달 미루어지던 일이 어느새 1년 2년으로 지연되었고, 이제 없었던 일이 되어버리는 게 기정사실로 여겨지려는 즈음 hpt출판사에서 직접 사람이 서울을 방문하여 나를 만나기를 원한다는 전갈을 받게 되었다. 마침 디자인하우스와의 출판권 계약이 만료되는 시점이라 혹 계획이 차질이 생길까봐 저작권자인 나를 만나 그 문제를 못박아두려 했던 것이다. 어떻튼, 운명의 끈질긴 노력 끝에 98년 봄 드디어 독일어판 <나무꾼과 호랑이 형님>이 탄생을 하게 되었다.

그 해 10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 도서박람회장.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전시장을 나는 얼마나 가슴 부풀어하며 돌고 또 돌았는지 모른다. 어린이 도서만을 따로 모아놓은 전시관의 골목골목을 걸으며 나는 점점 맥박이 급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의 그리운 호랑이 형님을 어느 모퉁이에서 마주치게 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었다. 안내지도를 찾아 hpt출판사의 부스 위치를 미리 확인해둘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철저히 관객의 눈이 되어 그를 만나고 싶었다. 세계 각국의 출판사로부터 출품된 수도 없이 많은 훌륭한 그림책 중에서 나의 호랑이 형님은 스스로의 힘으로 당당히 내 눈을 사로잡을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혼자만의 힘으로 성공의 자리에 이른 자식에 대한 최대한의 존경과 애정의 표현이랄까. 어떻튼 나는 내 눈에만 유독 잘나보이는 안경 같은 걸 끼고 자식을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못난 부모는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관객이야. 나는 이 중의 어떤 책에 대해서도 아무런 편견이나 불공평한 호의를 가지고 있지 않아. 나는 철저한 제3의 눈이 되어야 해.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며 걸어가다가 다음 부스로 눈을 돌린 순간 아! 그곳에 나의 호랑이 형님이 늠름한 모습으로 나를 멈춰 세웠다. 맨 처음 주어진 자태 그대로를 조금도 흐트림 없이 표지 안에 엎드려 있는 호랑이.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 잠긴, 착하디착한 나의 호랑이……. 순간 가슴으로부터 덜컥,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였다.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급하게 멈추느라 내는 소리. 하지만, 나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잠시 눈으로만 그와 만나며, 나는 마음으로만 말하였다. 마음 약해지지 마. 너는 너 스스로가 훌륭해져야 하는 거야.
먼 발치로만 바라다보는 자식의 기특한 모습. 하지만 그가 더욱 크고 의젓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더 큰 사랑의 마음은 그에게 다가가 어깨를 보듬어 안아주는 따위의 그를 나약하게 하는 행동을 삼가게 하였다. 아주 짧고, 기쁘게, 그리고 아프게 만났던 프랑크푸르트에서의 나의 <나무꾼과 호랑이 형님>에 대한 기억은 세월이 아무리 많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자식과도 같은 나의 첫 책에 대한 기억이다.

이후로도 호랑이 형님의 운명은 끝나지 않아, 출판사가 한 차례 바뀌었고 이제는 한글판과 영문판 두 종류로 나뉘어 출간되어 각기 서울과 미국의 도서시장에 유통되고 있으며, 최초의 출간일로부터 1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간간이 한번씩 출판사로부터 인세를 지불받고 있으니 정말 깊고 끈질긴 인연이 아닐 수 없다. 

호랑이 형님과의 인연은 물론 이게 전부가 아니다. 93년도에는 이 책으로 말미암아 뉴욕의 대형 출판사인 퍼트남(Putnam)을 통하여 나의 두번째 한국전래동화 그림책인 <Magic Spring>을 출간하는 행운을 얻기도 하였다.
90년도쯤 뉴욕의 퍼트남 출판사에 보냈던 나의 출간 제의서를 받아본 퍼트남의 편집자 아서 러바인(Arthur Levine)씨는, 당시에는 별다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었지만, 이후 몇 년이 지나 자신이 시니어 편집자의 역할을 맡게 되자 몇 년이 지난 일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작업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주었고, 아트센터를 통해 수소문하여 디트로이트에 살고 있던 나를 찾아내주었던 것이다. 의외의 행운을 가져다준 그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호랑이 형님에게 감사하세요. 오래 전 나의 제안서와 함께 받아보았던 그 책이 매우 인상적이었고, 그 책으로 인해 새로 나오게 될 책에 대하여도 작가에 대한 충분한 기대와 신뢰를 가질 수 있었다고, 그는 내게 말해주었다.   

더이상 나는 일러스트레이터를 직업으로 삼고 있지 않으므로 그림을 그리지 않은 지는 꽤 오래되었지만 그 사이에도 <나무꾼과 호랑이 형님>과 <Magic Spring>이 나를 대변하여 한두 차례 일본에서 원화전시를 가진 적이 있고, 간간이 몇몇 출판사로부터 이후의 작업이 있다면 출간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받기도 하였다.
그래픽디자이너로, 북프로듀서로의 나의 새로운 일에 만족하고 있는 만큼 내 평생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언제고 기회가 된다면 다시 처음 호랑이 형님을 그릴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건 아마도 오래도록 가슴에 품게 될 나의 소박한 꿈이 되지 않을까 한다.

<나무꾼과 호랑이 형님> 글 재구성_이나미, 그림_이나미, 디자인_이나미, 1판(한글 영어 대역판) 디자인하우스 출간 1988, 2판(한글 영어 독어 대역판) hpt-Verlagsgesellschaft m.b.H & Co(Wien, Austria) 출간 1998, 3판(한글판, 영문판) 한림출판사 출간 1998, <Magic Spring>글 재구성_이나미, 그림_이나미, Putnam(New York, USA) 출간, 1993

2009/01/23 03:07 2009/01/23 03:07
dreaming 2009/01/23 04:31 P X R

볼로냐에 소개될 한국을 대표하는 그림책 작가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원화 전시작가:
강우현, 고경숙, 곽영권, 권문희, 권윤덕, 권혁도, 김동성, 김성민, 김세현, 김용철, 김재홍, 김환영,
박연철, 박철민, 백희나, 신동준, 윤미숙, 이성표, 이수지, 이억배, 이영경, 이우경, 이태수, 이형진,
이혜리, 이호백, 정순희, 정승각, 조혜란, 한병호, 한성옥, 홍성찬 이상 32명

추가 소개 작가 :
강우근, 강혜숙, 고광삼, 권사우, 김근희, 김동수, 김복태, 김선남, 김선배, 김영수, 김영진, 김유대,
김은정, 김정선, 김종도, 김종민, 김중석, 김천정, 남주현, 노성빈, 박경진, 박은영, 박의식, 박재철,
박해남, 박현정, 배현주, 백남원, 백지혜, 송수정, 송진헌, 신혜원, 심미아, 심은숙, 안은영, 양상용,
오승민, 오정택, 유승하, 유애로, 윤봉선, 윤정주, 이광익, 이나미, 이민희, 이서지, 이승현, 이우범,
이종미, 이진아, 이춘길, 인강, 정성화, 정유정, 정지예, 정지윤, 정태련, 조미자, 조선경, 차정인,
최미란, 최민오, 최숙희, 최은미, 최향랑, 최혜영, 탁혜정, 한상언, 한태희, 황은아 이상 70명

sumi lee 2009/01/28 13:07 P X R

Happy Birthday to you~~~
더 많은 한국전래 동화의 캐릭터들의 대표님의 정겨운 붓터치로 새 생명을 찾는 그날이 오길 바랍니다!

dreaming 2009/01/31 12:21 P X R

Thank you, sis~ : )


북디자이너가 말하는 북디자인..

article   2008/12/13 13:43
두어달 전 '북디자인'에 대한 짧은 글 한 편을 부탁받았다.
앤드류 해슬램의 책을 호서대의 송성재 교수께서 번역하여 안그라픽스에서 출간하는,
<북디자인 교과서>라는 책의 '한국의 북디자이너-10인의 북디자이너가 말하는 북디자인 정의'에 삽입된 글이다.




인쇄되어 나온 페이지를 보니 글이 다소 생략이 된 것은
지면관계상 어쩔 수 없었다 하더라도
글줄을 바꾸는 일이 섬세하지 못하여
전체적으로 의미가 매끄럽지 못할 뿐더러
마지막 문장의 뜻이 이상하게 되어버렸다.
'머리와 가슴으로 존재하는 한'이 아니라,
'머리와 가슴으로 존재하는 한 사람에게'라고 읽혀야 옳다.
원래의 내용으로 정정을 하자면 아래와 같다...

세상을 향해 품은 누군가의 생각을 담은 글이 있어,
그 글이 간곡한 심정으로 나에게 그의 정신을 담을 육체를,
그의 육체를 거하게 할 집을 지어줄 것을 부탁해 온다면? 
그리하여 그 글이 '글자'라는 육체를 얻어,
그 글자들이 '책'이라는 집에 안거하며
세상과 비로소 온전히 소통할 수 있게 된다면...?

북디자인이란 내게 그와 같은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그 생각을 옳게 이해해야 하고,
그 마음을 깊이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글자는 곧 그 생각을 말하는 이의 목소리와 같으니
그 모양과 크기가 어떠해야 할지를 알게 되며,
그의 감정과 논리에 따라 호흡과 박자를 다스려
페이지를 넘길 수 있도록 해야 함을 알게 된다.
또한 어떠한 표정과 동작으로 첫 표지를 열도록 해야 할지를 가늠하는 일은
그의 성품을 이해하는 바와 같다.
북디자인은 내게, 머리와 가슴만으로 존재하는 한 사람에게
얼굴과 몸과 목소리, 몸짓과 표정을 만들어 주는 일이다.

_북 프로듀서 이나미

2008/12/13 13:43 2008/12/13 13:43


굿디자인

article   2008/11/12 16:05


<정글> 11월호의 특집인 '굿디자인은.......이다'에 대한 원고를 쓰느라 독일 출장 중 하루 이틀의 밤잠을 줄여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다면 결코 글로 태어나지 못했을 생각이다...

 
굿디자인은 효율적인 삶의 시스템과 개성있는 삶의 스타일을 가능하게 한다

이나미 글_

바쁜 일상 속 매일같이 점심메뉴를 고민하는 직장인들에게 점심끼니를 해결하기 위한 효율적인 해결방식은 어떤 것이 있을까.
사람마다 우선 순위가 달라질 수는 있겠으나 우선 몸에 좋은 먹을거리를 생각해야 하고, 이왕이면 먹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어야 하며, 여기에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면 그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건강과 규모있는 삶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라면 직접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 매일매일 비싼 돈을 지불해가면서 인공조미료가 잔뜩 들어가 있는 음식을 사먹기보다는 조금 번거로워도 건강을 위해, 또한 의미없는 지출을 막기 위해 직접 싸가지고 다니는 점심도시락은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다. 하여, 주말마다 엑스트라의 시간을 투자하여 한 주일의 먹을거리를 계획하여 신선한 식재료를 구입하고 손질하여 간편히 점심도시락을 싸갈 수 있도록 준비하는 삶을 시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처럼 건강하고 규모있는 삶에 대한 결심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디자인이 잘된 도시락 통이다.

세상에는 모양과 색상, 크기와 구조가 다른 다양한 도시락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 모든 도시락이 공통으로 안고 있는 문제는 먹고난 빈 도시락을 가지고 돌아올 때의 번거로움이다. 가지고 갈 때야 점심 끼니를 해결해줄 기대로 기꺼이 그 무게와 부피를 감당한다고 하더라도 먹고난 후에도 여전히 같은 부피로 존재하는 빈 도시락은 여간한 골칫거리가 아니다. 여기에 저녁 약속이라도 생긴다면 빈 도시락은 그야말로 애물단지가 되어 버린다. 사무실에 두고 가자니 다음날 점심을 싸올 수 있는 방편이 없어지고 들고 다니자니 귀찮은 건 차치하고라도 저녁내 남들에게 보여질 모습이 도무지 마땅치가 않다. 외모와 스타일에 민감한 젊은 세대라면 바로 이 점이 끔찍하게 느껴져 어렵게 결심한 도시락 싸기를 포기하게 될 수도 있다. 변변치 못한 도시락 통 하나 때문에 이 모든 결심을 그르치거나 고민하고 갈등하는 삶이 반복될 수 있다.  

삶이 아무리 괴로워도 도시락으로 인해 비롯된 모든 문제는 도시락으로 해결할 수 있다. 문제가 있는 곳에 해결책이 있다는 삶의 진리를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디자인이 잘된 도시락 통 하나쯤은 우리 삶에 꼭 필요하다. 해결해야 할 문제는 간단하다. 내용물이 없을 때는 도시락의 부피가 간결하게 줄어들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처음부터 부피가 적은 도시락을 찾아야 하니 보온 도시락은 포기하는 쪽이 마땅하다. 도시락을 쌀 때는 밥통과 반찬통이 따로여도 먹고난 후에는 큰 통 안에 작은 통이 들어가도록 되어있는 도시락을 찾는 것도 방법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도시락이 가지고 있는 최초의 부피는 여전히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이것은 정말 어쩔 수가 없는 것일까.

조그마한 살림집 한 채 정도의 규모를 지닌 '북촌 생활사 박물관'. 우연한 기회에 방문을 하게 된 이 곳에서 나는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디자인의 도시락을 만났다. 얄팍한 참고서 한 권 크기의 양은 도시락은 높이를 만들어 줄 4개의 '벽'이 조립식으로 되어있었다. 사용할 때는 4개의 벽을 세워 내용물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먹고난 후에는 벽을 뉘여 도시락의 높이를 4분의 1 정도로 줄일 수 있는, 너무도 명쾌하게 그간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도시락이었다.
1센티미터가 조금 넘는 정도의 납작한 도시락이라면 노트북 컴퓨터 가방 안에 넣어도 전혀 티가 나지 않을 크기다. 도시락으로 인해 삶의 스타일이 구질구질해보일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뿐만 아니라, 효율적이며 자신감 넘치는 자신만의 개성있는 삶의 시스템을 자랑할 수 있을 만큼이다. 그와 같은 도시락을 생각해낸 이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한가지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그의 디자인은 도시락으로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돌보려는 사람들에게 효율적인 삶의 시스템을 제공하며 세련된 모습의 삶의 스타일을 가능한게 한다는 것이다. 그가 정식으로 디자인을 공부한 적이 있거나 없거나 간에 그의 도시락에 굿디자인 마크를 붙여주고 싶다.
       

2008/11/12 16:05 2008/11/12 16:05


디자이너는 무엇을 위해 밤을 새우는가

article   2008/08/20 20:30

7월호 <월간 디자인>에 기고한 에세이에 대해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 어린 인사를 건네온다.
아마도 '밤샘'이라는,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다루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글 자체에 대해서도 좋은 평을 많이 듣게 되었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이 꼭지를 담당했던
월간 디자인 최태혁 기자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듯 하다.
초고 상태에서 원고 분량이 넘쳤는데 그의 '집요한' 요청에 따라 정교하게 글자 수를 맞추어 줄여가다 보니
아주 간결한 상태의 글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역시.. 글은 간결할수록 감칠맛이 난다.
말도 글처럼 '편집'을 해서 뱉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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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자이너는 무엇을 위해 밤을 새우는가 ]

일과 속 디자이너들은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지만 집중력을 방해하는 그 무엇이 늘 그들을 괴롭힌다. 거래처로부터의 전화와 미팅, 팀원들 간의 회의 등이 작업과는 별개의 흐름을 만들며 교란한다. 그 산만함을 제어할 힘을 갖지 못한 채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기다 보면 어느새 퇴근시간. 저녁을 먹고 좀 더 일을 할 것인가, 아니면 빨리 일을 마치고 퇴근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지만 7시가 넘어갈 무렵엔 결국 ‘야근’을 결심한다.
저녁을 먹고 난 후엔 육체의 구속을 대가로 한 정신의 자유에 대한 보상심리가 발동을 한다. 쫓기지 말자. 어차피 야근할 거, 느긋하게 하자. 떳떳하게 한 두 시간 채팅과 웹서핑을 즐기다 보면 어느새 10시. 이때쯤엔 작업에 박차를 가하며 12시 전에는 퇴근을 하자고 마음을 먹어보지만, 겉마음과 달리 속마음은 이미 12시를 넘길 채비를 하고 있다. 한동안 몰두하여 작업을 하다 보면 새롭게 시도해보고 싶은 방식에 대한 호기심이 들기도 한다. 여유를 갖게 되었으니 좀 더 잘해보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작업은 쉽사리 결론에 이르지 않는다. 혼란에 빠지게 되면 무엇을, 어떻게,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원천적인 문제의식조차 희미해진다.  바로 이때쯤 정신을 따르려는 육체의 의지는 한계점에 도달한다. 종일 혹사당하여 휴식이 필요해진 육체를 상대로 한 정신의 가여운 투쟁은 ‘잠’이라는 절대권력 앞에 투항하고 만다.
모니터 앞에 굴복자세로 엎어져 잠이 들던, 머리받침이 없는 의자 등판에 목이 뒤로 꺾여 항복자세가 되어 잠이 들던, 시간은 흘러간다. 서슬 퍼렇게 밤을 밝히는 형광등 불빛은 잠든 이의 잠들지 못하는 의식을 괴롭힌다. 깨어나 일을 하라고. 하지만, 정신은 이제 완전한 무저항 상태에 이른다. 2시. 무의식 중에도 의식은 도무지 육체를 깨워 일으킬 수 없음을 안다. 4시. 소스라치게 놀라 깨어난 의식은 재빨리 육체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알린다. 9시 미팅에 맞추자면 7시까지는 마무리해야 옷을 갈아입고 올 시간을 얻을 수 있다. 서둘러야 한다. 어젯밤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모색의 과정을 찾아 한참 벌여 놓았던 작업의 상태를 재빨리 수습해야 한다. 최상은 아닐지라도 최선의 상태로나마 작업을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6시. 마음은 급한데 창 밖은 어느새 아침.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있다.
‘밤샘작업’을 생각하지 않고는 디자이너가 될 수 없다는, 예나 지금이나 말해주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깨닫게 되는 사실은 업계의 가슴 아픈 현실을 대변해준다. 나 역시도 밤새는 일에 대해 자신 있게 ‘아니’라고 말하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고 긴 세월 무수히도 많은 밤을 새워왔다. 밤을 새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숨이 턱에 차듯 일이 늘 바쁘게 돌아가는 이유가 가장 크겠지만 그 외에도 집중력이나 작업진행 능력이 아직 부족한 이유,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이유 등이 있다. 그러나, 그 중 가장 안타까운 이유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충분히 휴식하지 못한 이유이다. 잠이 부족하기 때문에 작업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작업의 완성도가 떨어지다 보니 좀더 시간을 투자하기 위해 또 밤을 새게 되는 것이다.
언젠가 단골 김밥집 아주머니가 우리들의 잦은 야근을 염려하기에 무심코 “아주머니는 야근 안 하세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아주머니가 야근까지 하며 김밥을 싸실 거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다. 그러나 아주머니의 대답은 내 뒤통수에 일격을 가하듯 충격적이었다. “밤새면 손맛이 써져서요.” 김밥집 아주머니가 손맛이 써져서 김밥의 맛을 망칠까봐 밤을 새지 않는 동안 디자이너들은 무엇을 위해 그 많은 밤을 새왔던 것일까. 디자이너들이 새워온 수많은 밤은 도대체 디자이너의 무엇을 망치고 있었던 걸까.
나는 요즘 여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하루 6~7시간 정도를 꼬박 잠을 위해 투자하고 있다. 4시간 이상 자는 것을 수치로 여기며 ‘늘 깨어있는 삶’을 자랑으로 알던 그간의 삶을 완전히 뒤집은 셈이다. 나라는 디자이너가 아무쪼록 좋은 디자인을 할 수 있도록 나의 정신이 나의 육체를 위해 이제야 무언가를 기여하고 있는 게 틀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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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0 20:30 2008/08/20 20:30
김승현 2008/09/02 18:19 P X R

참 인상적인 글이었어요. 대하소설이든 한 줄짜리 카피이든, 좋은 문장은 꽉 들어찬 하나의 유기체라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가감이 필요 없는 상태, 최적화된 유기체 말이죠. 대표님, 건강히 잘 지내시지요?

dreaming 2008/09/02 20:04 P X R

최적화된 유기체.. 그 말이 참 맞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