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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겆이 수행

inamigination   2010/02/08 01:30
조병수 선생님 내외와 배영진 선생님 내외를 초대한 토요일 저녁식사..
집에 손님을 초대하여 식사를 나누는 것은 정말 오랫만의 일이다.
손님을 초대하자면 음식 준비에 앞서 집 안팎 점검과 청소가 만만치 않은데
일단 지난 주말을 통해 마당 청소와 집안 정리를 어느 정도 해두었다.
(우리 집은 손님이 오셔야만 미루었던 청소가 가능해진다!)

남편은 모든 식사준비를 스스로 해결하겠노라 큰 소리 쳐놓고는
토요일 2시에 회의가 잡혀 결국 5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뭐.. 한 두번 겪은 일이 아니므로 임기응변의 실력은 남못지 않게 쌓아온 터라
머리와 몸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준다.

조병수 선생님이나 배영진 선생님의 사시는 모습에 비하면 너무도 누추한 살림이지만
우리 나름대로의 사는 모습을 꾸밈없이 보여드리고
우리 나름대로의 멋과 정성이 깃든 음식을 대접하는 것도
'우정'을 나누는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어  
지은지 30년도 넘은 집이라 여기저기 낡고 망가져 민망하게 방치된 우리 살림살이를
너무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남편이 직접 만든 재치있는 일식 메뉴들이 화제가 되어
모두들 오랜 시간 즐겁게 함께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며
(내가 끓인 메생이국도 모두들 좋아라 하시며 두 그릇씩이나 드셨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수빈을 기다렸다가
수빈이 조연출을 맡아 공연 중인 뮤지컬 Man of La Mancha의 몇대목의 노래까지 청하여 들으시고는
새벽 3시가 다 된 시각에서야 귀가를 하셨다.



늘 그렇지만 손님을 보내고 난 뒤 부엌의 모습은 나의 도전감을 자극한다.
쌓여있는 설겆이 거리들을 보며 나의 눈은 이 노릇을 어찌할고.. 나를 걱정스럽게 하지만
나의 손은 자신의 마법과도 같은 실력을 믿어보라고.. 나를 안심시킨다.




피로를 풀기위해 일단 잠을 자고 난 뒤 일요일 오후 긴 시간을 들여 느긋하게 설겆이를 했다.
엉망진창으로 더럽혀진 그릇들이 내 손을 거쳐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놀라운 경험이다.
나의 작고 통통한 두 손이 해낼 수 있는 어마어마한 능력을 관찰하는 것은 너무도 경이로운 일이다.
내 손의 분주한 노력 덕분으로 나의 부엌은 다시 정갈해졌고
고즈넉한 시선으로 부엌을 돌아보는 나의 마음은 더할나위 없는 기쁨으로 충만하다.
노동을 통해 얻은 댓가는 돈으로 살 수 없는 행복을 가져다 준다.
그래서 나는 이 일을 '설겆이 수행'이라 부른다.
 
2010/02/08 01:30 2010/02/08 01:30


어흥~

inamigination   2010/01/03 14:41


햇살이 따스한 오후 느긋하게 엎드려 새해 첫 신문을 펼쳐보니 오홋~
눈에 확 들어오는 속시원한 포맷의 광고지면 위로 잘 생긴 호랑이 한 마리가 내닫는다.
펼침면 전면이긴 한데, 4면짜리가 좍 펼쳐지는 이 지면은 일찌기 본 적이 없는 포맷이다.
어흥~ 글자는 강병인님의 캘리그래피가 분명한듯.
새해 초 독자들의 가슴을 뻥 뚫릴만큼 시원하게 질러준 댓가로
엄청난 금액의 광고비를 지불했을 듯(엄청난 금액의 광고수익을 챙겼을 듯) 싶지만
암튼 그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만한 색다른 지면을 생각해낸 디자이너의 아이디어가 멋지다.

어흥~ 나도 한번 질러볼까나.
새로운 해의 새로운 도전을 위하여.

---
그런데..
파일 업로드가 안되는 이유는..?
하도 오랜만에 포스팅을 하다보니
뭔가 달라진 사항이 있어도 난 알 수가 없는거지.
내일 사무실에서 도움을 청할 밖에..
T-T

2010/01/03 14:41 2010/01/03 14:41
dreaming 2010/01/14 11:39 P X R

음하하.. 드디어 화일 업로드가 됩니다.
사실 이 문제를 해결하느라 텍스트 큐브 버전을 높이는 과정에서 충돌이 생겨
바프의 5년치 블로그를 몽땅 날릴뻔 한 아슬아슬한 일이 있었더랬습니다.
연중 팀장. 수고가 많았습니다.
등골에 식은 땀이 흐르는 재난의 순간이 멋진 재기의 순간으로 전환되는
극적인 새해 벽두의 이벤트..!
호랑이 해.. 호랑이 띠 연중 팀장에게 대박의 행운이 오기를 기원합니다.
^_^

chung yeonjung 2010/01/19 13:45 P X R

어흥!


시간 되살리기 놀이

inamigination   2009/07/04 16:25
토요일 아침.
고작 3GB 정도가 남았을 뿐인 노트북을 더이상 방치할 수는 없겠기에
화일 정리와 백업, 화일 지우기를 반복한 끝에
추가로 10GB 정도의 여유공간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그간 미처 관심을 가져주지 못했던 삶의 순간 순간들이
두꺼운 먼지를 쓰고 쌓여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들은 자신이 원래 속했던 순간을
년.월.일.시.분.초 단위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으니
디지털의 힘은 정말 위대하다..!

내친 김에, 입력 시간을 임의로 조정할 수 있는 이 블로그의 기능을 이용하여
지난 시간들 사이 사이에 놓쳐버린 시간들을 끼워넣는
'시간 되살리기 놀이'를 즐기기로 한다.

2009/07/04 16:25 2009/07/04 16:25
dreaming 2009/07/05 11:22 P X R

일요일 아침 7시가 좀 지난 시각부터 시작된 나의 '놀이'는 11시가 좀 못 되어 일차 종료를 한다. 헉헉..
7월 2일 하루의 시간을 되돌리는 일만으로 4시간 가까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니
블로그를 통해 내 삶을 한번 샅샅이 기록해보리라는 나의 희망이 얼마나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를 새삼 깨닫는다....
하지만, 나는 이 놀이를 정말 사랑한다.
내 삶의 실행자와 내 삶의 관찰자의 시각을 오가며 끝없이 반복되는 나의 '프랙탈' 놀이는
내 삶을 200% 내 것으로 만드는 멋진 방법이 되므로.


구룡의 대각성기(大覺醒記)

inamigination   2009/07/02 23:15



모토엘라스티코에서의 회의가 끝나니
6시가 미처 못 된 시각에 하루의 일과를 모두 마친 셈이 되었다.
우리는 출출한 배도 채울 겸 광장시장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이곳에서는 역시 막걸리가 제격이다.
두툼한 순대와 쫀득한 돼지 족발 안주와 함께 분위기가 무르익자
구룡이 본격적인 말문을 연다.

비엔날레 도록 회의를 위해 한주간 파트별 큐레이터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람, 다양한 공간,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저마다 느끼는 바가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부끄러움과 자기 반성에 대한 점은 우리 셋에게 모두 공통적이었다.
조병수 선생님과 세계적인 건축가들로부터 배운 디자이너의 작업에 대한 겸허하면서도 열정적인 '태도'와
김영일 선생님의 자기 꿈에 대한 소신있는 추진력과 분명한 '태도',
모토엘라스티코의 새로운 시각과 창의적 실천, 여유로운 삶의 '태도'를 통해 깨닫는 부끄러움과 자기 반성에 이어
구룡에게는 특별히 이를 넘어선 '대각성(大覺醒)'의 순간이 열린 모양이었다.

한번 깨달음의 눈이 열리면 수많은 것들이 보이고 들리기 시작하는 법.
오늘 오전 시니어 라이프와의 회의 중에 일어난 동시다발적인 순간에서의
왕정민씨의 작은 행동을 통해 그는 놀라움과 부끄러움을 느낀 듯 그 말을 하고 또 한다.
회의 중에 온 전화에 답하기 위해 내가 비엔날레 사무실의 다용도실 겸 화장실로 잠시 자리를 피해 통화를 하는데
이 모습을 놓치지 않고 정민씨가 슬그머니 화장실의 불을 켜주었다.
아무에게도 아무런 생각을 일으킬 일이 결코 아닐 수 있었음에도
'눈이 열린' 구룡에게는 이러한 태도가 얼마나 큰 배움의 기회가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결국 저녁 내내 여형과 나는 구룡으로부터 이 이야기를 스무 번도 더 듣게 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런 사소한 일이 구룡에게 그토록 깊은 깨달음과 감동을 줄 수 있었는가.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는데, 우리가 애용하는 성대입구의 주점 '이씨네' 주인장과의 얼마 전 대화가
그에게 대각성의 첫 망치가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내친 김에 자리를 옮겨 '이씨네'를 찾았다.
(시간은 아직 8시도 안되었다..!)
이씨네의 명품 안주 '초절임 고등어'는 언제 먹어도 정말 변함없는 명품이다.
주종은 역시 막걸리로, 구룡의 대각성의 스토리는 이어진다.

얼마 전 이씨네에서의 술자리에서 이씨네 주인장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던 모양이다.
언제나처럼 구룡의 해박다식한 이야기가 펼쳐졌는데, 이를 한참 듣던 주인장의 말씀-
"그래서, 네가 하고싶은 이야기가 뭔데..?"
순간 그의 한 마디는 이십 칠팔년간을 의지해 왔던 구룡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았던 것이다.
"그.그......... 모르겠습니다."

하하..
이 순간 이후로 구룡에게는 새로운 시야가 열리고
무수한 부끄러움에 몸둘 바를 모르겠어도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터져나오는 기쁨이 그를 온통 사로 잡은 것이다..
(결국 여형과 나, 그리고 이씨네 주인장까지.. 우리는 저녁 내내 구룡으로부터 이 이야기를 스무 번도 더 듣게 된다..)



장마라고는 하나 예전과는 전혀 다른 패턴의 오락가락하는 비는 저녁 늦은 시간 엄청나게 퍼부어댔고
구룡의 대각성의 순간에 더할 나위 없는 감동을 보태주었다.
꽃의 개화의 순간을 목격한 듯 함께 자리한 사람들의 감동도 더할 나위 없다.

위대한 누군가의 생각으로 나의 생각을 대변하는 일은
나의 머리를 잠시 든든하게 할 수는 있겠으나
나의 눈과 나의 귀, 나의 가슴을 대신 열어줄 수는 없을 것이다.
누군가의 위대한 생각들로 점철된 나의 '앎'이
나의 존재를 설명해줄 수 없는 것처럼.

그러니 선택의 여지는 없다.
한없이 부족하고 한없이 가벼운 존재에 대한 깨달음과 반성을 토대로
스스로의 삶을 살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라고 말하려는 순간
소백산 봉철스님의 가르침이 나의 뒷통수를 호되게 내리친다.

'안다는 것(앎)은 오직 알지 못함을 아는 것이다..'




2009/07/02 23:15 2009/07/02 23:15


모토엘라스티코

baflog   2009/07/02 17:26



오늘은 거의 2시간 간격으로 회의가 있는 날이다.
4시반. 오후의 마지막 회의는 모토엘라스티코 팀과 비엔날레 전시디자인을
어떻게 도록에 소개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자리이다.
마르코와 시모네는 이태리 토리노 출신의 건축가들로
한국과 인연을 맺어 서울과 토리노를 오가며 디자인을 하고 있다.

종로 5가 광장시장을 끼고 돌아 청계천을 따라 늘어선 작고 오래된 건물의 하나에
모토엘라스티코의 사무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사무실 출입구가 누워('서'가 아니라) 있어
그 문을 '위로'('앞으로'가 아니라) 밀치면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삼각형으로 난 쓸모없는 공간을 디자이너만의 새로운 발상으로 전환,
네 코너 대신 세코너를 지닌 공간을 2개층 이어 작업공간으로 사용하고 있고
또한번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작은 놀이공간이 이어진다.
(현재는 드럼세트와 전신거울이 놓여있다.)
그 공간은 옥상의 작은 테라스 공간으로 이어지는데...
이곳에서 내려다 보는 전경은 그야말로 광장시장에 대한 그간의 고정관념을 대번에 깨버린다.
세느강은 저리가라 할만큼 멋진 청계천 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되는데
나로서는 서울에 그리 오래 살아도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그런 멋진 서울의 모습이다.
역시.. 이태리 출신다운 여유롭고 창의적인 시각으로
서울에 사는 디자이너로서는 상상도 못할 그런 공간을 찾아내어
멋진 창조의 산실을 마련한 것이다.

함께 회의에 참석한 여형과 구룡이 이 놀라운 광경에 휘황한 표정이 되었다.
하긴, 나도 처음에 그랬으니까..
^_^


 

2009/07/02 17:26 2009/07/02 17:26


보석 토마토

inamigination   2009/07/02 15:45


베란다 화분에서 자라던 방울토마토가 빨갛고 탐스럽게 익었다.
5월에 신한은행에서 고객들에게 선물로 주었던 토마토 모종을 얻어다
설희가 화분에 심어두었던 것인데
노란 꽃이 핀 후 콩알만한 파란 열매가 달리더니 어느새 빨갛게 익은 것이다.
조롱조롱 빗방울이 매달린 그 모습은 보석 중의 최고의 보석과 같다.
오직 한 줌 흙에 의지해 저토록 눈부신 결실을 이루어 내다니 대견하기만 하다.
난 아무 것도 해준 게 없는데..

2009/07/02 15:45 2009/07/02 15:45


비오는 아침의 '결정적인 순간'

inamigination   2009/07/02 09:55


오전의 첫 회의가 인사동 비엔날레사무실에서 있는 것을 빌미로
오랫만에 종로에서 바라보는 비오는 아침의 정취를 즐길 계획을 세워본다.
한 40분 가량 일찍 도착하여 아직 손님이 뜸한 던킨도너츠에서 커피와 베이글을 주문한다.
거리로 향한 창가에 앉아 최근에 읽던 책과 카메라를 꺼내든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기 전에 먼저 거리를 향해 대여섯장을 연속으로 눌러댄다.
물론 '찰칵' 소리는 나지 않는다.
사진을 찍는 이에게도 사진이 찍히는 이에게도
어떤 의미에서든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를 강조하는 것은
나의 사진찍기 작업에 위배가 된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무음' 모드를 절대적으로 선호한다.

순간과의 인연은 화면 속에 멋진 주인공을 만들고 멋진 레이아웃을 탄생시킨다.
나의 사진찍기는 화면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없이
찍고 싶은 순간에 가급적 여러 번 셔터를 눌러댄 후 그 중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고르는 빙식이다.
물론 트리밍이나 크롭은 하지 않는다.
순간과의 인연을 절대적으로 존중하기 때문이다.
사진이란 내게 기술이나 감각이 아니라
나의 손가락이 셔터를 누른 순간 카메라 프레임 속에 뛰어 들어 정지된 피사체들과의 인연이다.

후에 알고보니 나와 같은 방식으로 사진을 찍었다는 사람이 있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다.
물론 그도 알 것이다.
내가 그의 흉내를 내어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그가 말한 '결정적인 순간'이란 그만의 사진찍기 방식이 아니라는 걸.
사진을 찍다보면 누구나 공통적으로 발견하게 되는
사진찍기의 본질에 대한 그의 발견을 말한 것일 뿐이라는 걸.
 
커피도 좋고 크림치즈를 듬뿍 바른 베이글도 좋았다.
지난번 혼자만의 여행 때 시작하였던
너새네이얼 웨스트의 <미스 론리하트>를 좀더 진행하였는데
막 재미가 붙으려는 즈음에 책을 덮어야 했다.
회의시간 5분 전이다..


2009/07/02 09:55 2009/07/02 09:55


혼자만의 시간 4_paradise

travelog   2009/06/23 23:26


화창한 햇살에 눈을 뜨니 여전히 바다가 눈 앞에 있다.
잠자리에 누워 바다를 보고 하늘을 보다니 (어젯 밤 하늘에는 별이 무수하게 떠있었다..!)
불쑥 떠난 여행에서 어떻게 이런 행운을 만났을까도 싶다.
주인의 센스가 느껴지는 브렉퍼스트 부페도
바다를 마주하고 느긋하게 먹는 아침식사도 모두 마음에 든다. (게다가 손님은 나 혼자 뿐이다..!)
나는 여기저기 다니기보다는 이곳에서의 시간을 마음껏 누릴 계획을 세워본다.

휴일날 집에서처럼 세수도 안한 채 여유롭게 아침을 즐긴 후
바다가 보이는 나무욕조에서 느긋하게 목욕을 즐기기로 한다.
창문을 열고 바다공기를 마음껏 쏘이며 더운 물에 몸을 담그고 나니
억눌려 있던 온 몸의 기운이 명랑함을 되찾는다.

나는 아이처럼 즐거운 기분이 되어 발가벗은 몸으로 방안을 누빈다.
인간이 몸을 가리는 이유는 타인의 눈 때문인 것이니
타인의 눈이 존재하지 않는 이 곳에서
몸에게 마음껏 바다공기를 느낄 수 있는 자유를 주기로 한다.





맨몸으로 누워 바다를 보며 책을 읽는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즐거운데
그 상상이 현실로 이루어지자 그 사실을 실감하는 즐거움이 더 커
책을 읽는 일에 집중이 어려울 만큼이다.
하지만 그간 읽지 못했던 이책 저책 사이를 겅중겅중 건너다니며
책의 내용을 대강대강 파악하는 일도 충분히 즐겁다.

어디서도 누리지 못한 자유를 이곳 방 안에서 흠뻑 누릴 수 있다니
철저히 닫혀 있으면서도 활짝 열린 이런 공간이 존재하고 있다니
이 특별한 공간과의 만남에 감사한다.





방안에 비치되어 있는 CD플레이어는 나에게 또 하나의 기쁨을 선사해준다.
원하는 음악을 이어폰이 아닌, 나를 감싸고 있는 공기를 통해 들을 수 있다니,
남들에게 방해될까 조그만 소리로 조심조심 듣는 것이 아닌, 방 안 가득 채워 들을 수 있다니,
작지만 큰 행복감이 나를 감싼다.
바다와 햇살과 음악과 책과, 그리고 나의 노트북과 카메라와 함께 하는 혼자만의 시간은
이로써 더 바랄 것이 없다..  




2009/06/23 23:26 2009/06/23 23:26
sumi 2009/06/29 17:59 P X R

멋져... 혼자만의 파라다이스...
목조 욕조통도 맘에들고 바다를 가득 품은 창도...그 앞에 이마를 맞대고있는 침대도...
나도 언제 한번 가고 싶네...

dreaming 2009/07/01 08:30 P X R

네. 좋았어요...
^_^

장주희 2009/07/02 22:17 P X R

나만을 위한 식탁을 차리기 위해 장을 보는 대목이 특히나 맘에 들었어요.
가끔씩 이렇게 충전을 해야 하는데..
언제나 큰언니 사는 모습만 부러워하네요. ^^
잘 지내고 계시는군요.
가끔 사는 얘기 듣고파 들렀다 갑니다.

dreaming 2009/07/04 15:29 P X R

주희님의 반가운 흔적.. 고맙습니다.
^_^


혼자만의 시간 3_새벽

travelog   2009/06/23 21:41



바다 쪽으로 난 창문을 열고 밤하늘을 보며 잠들었는데
새벽녘 창밖에서 들리는 물소리에 잠을 깼다.
무슨 일인가 싶어 사위를 살피니 밀물이다.
밀려 들어오는 바닷물이 철썩철썩 소리를 내며
갯벌의 흔적을 감추고 있다.

내가 잠든 사이에도 지구는 돌고 있으며
달과 해는 끊임없이 서로 작용을 하여
물을 끌어당기기도 하고 밀어내기도 한다는 것이니
새삼 놀라운 우주의 품을 느끼게 된다.

다시 잠자리에 누워 새벽바다를 본다.
새벽하늘을 본다.
우주를 본다..


2009/06/23 21:41 2009/06/23 21:41


혼자만의 시간 2_혼자만의 공간 찾기

travelog   2009/06/23 18:53


변산반도의 해안선을 따라 거의 한 바퀴를 다 돌 즈음.
내가 찾고 있던 곳을 드디어 발견했다.
작은 포구를 끼고 바다를 향해 서있는 곳..
이 곳은 내가 원했던 바로 그런 곳이다.
작고 조촐하지만 배려깊은 공간.
완벽한 프라이버시와 자유가 조화를 이룬 공간.
게다가 방 안 가득히 바다를 들여놓을 수 있는 공간이라니
이곳은 내가 꿈꾸던 바로 그런 공간이다.

운전을 하는 동안 몸과 마음을 긴장하게 만들었던 모든 '두려움'이 일시에 사라지고
이곳에서 내가 갖게 될 멋진 혼자만의 시간에 대한 '기대감''이 자라난다.

혼자이지만 나를 위한 즐거운 저녁식사를 준비하고자 장을 보기위해 나선다.
낯선 동네를 이길 저길 운전을 하며 휘젓고 다니는 기분은 개구장이처럼 신난다.
살면서 생전 처음 와보는 동네를 마치 내 집 동네인 것처럼 친숙한 기분으로
어렵지 않게 마트를 찾아내는 기분도 유쾌하다.

일인분의 저녁식사를 준비하기위한 장보기는 쉽지가 않다.
남기지 않으려면 가급적 간소한 메뉴가 되어야 한다.
심사숙고 끝에 스테이크 한 조각과 허브소금, 방울토마토, 포도를 조금 샀다.
여기에 준비해온 와인을 곁들이면 더할 나위 없는 저녁식사가 될 것이다.



나는 나를 위한 조촐한 피크닉 테이블을 마련하여 바다와 마주하고 앉는다.
썰물 때라 물이 빠져 바다는 저만치 멀어져 있지만
나 혼자 소유하는 바다 풍광은 과분하리만치 황홀하다.
어디선가 흰둥이 한마리가 다가와 제법 친구가 되어준다.





해가 지고 어두워진다.
물이 빠진 갯벌에 어둠이 깃들자 멀리 포구를 따라 정다운 불빛들이 하나둘 생겨난다.
컴컴한 어둠 속 온통 널러져 있던 내 삶의 조각들을 거둬들여 나도 내 안에 정다운 불빛을 하나 밝혀본다.
 
여기는 변산.
혼자만의 공간 속 혼자만의 시간이 주는 자유가 온통 내 앞에 놓여있다..
 


 
2009/06/23 18:53 2009/06/23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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