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되살리기 놀이

inamigination   2009/07/04 16:25
토요일 아침.
고작 3GB 정도가 남았을 뿐인 노트북을 더이상 방치할 수는 없겠기에
화일 정리와 백업, 화일 지우기를 반복한 끝에
추가로 10GB 정도의 여유공간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그간 미처 관심을 가져주지 못했던 삶의 순간 순간들이
두꺼운 먼지를 쓰고 쌓여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들은 자신이 원래 속했던 순간을
년.월.일.시.분.초 단위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으니
디지털의 힘은 정말 위대하다..!

내친 김에, 입력 시간을 임의로 조정할 수 있는 이 블로그의 기능을 이용하여
지난 시간들 사이 사이에 놓쳐버린 시간들을 끼워넣는
'시간 되살리기 놀이'를 즐기기로 한다.

2009/07/04 16:25 2009/07/04 16:25
dreaming 2009/07/05 11:22 P X R

일요일 아침 7시가 좀 지난 시각부터 시작된 나의 '놀이'는 11시가 좀 못 되어 일차 종료를 한다. 헉헉..
7월 2일 하루의 시간을 되돌리는 일만으로 4시간 가까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니
블로그를 통해 내 삶을 한번 샅샅이 기록해보리라는 나의 희망이 얼마나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를 새삼 깨닫는다....
하지만, 나는 이 놀이를 정말 사랑한다.
내 삶의 실행자와 내 삶의 관찰자의 시각을 오가며 끝없이 반복되는 나의 '프랙탈' 놀이는
내 삶을 200% 내 것으로 만드는 멋진 방법이 되므로.


구룡의 대각성기(大覺醒記)

inamigination   2009/07/02 23:15



모토엘라스티코에서의 회의가 끝나니
6시가 미처 못 된 시각에 하루의 일과를 모두 마친 셈이 되었다.
우리는 출출한 배도 채울 겸 광장시장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이곳에서는 역시 막걸리가 제격이다.
두툼한 순대와 쫀득한 돼지 족발 안주와 함께 분위기가 무르익자
구룡이 본격적인 말문을 연다.

비엔날레 도록 회의를 위해 한주간 파트별 큐레이터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람, 다양한 공간,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저마다 느끼는 바가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부끄러움과 자기 반성에 대한 점은 우리 셋에게 모두 공통적이었다.
조병수 선생님과 세계적인 건축가들로부터 배운 디자이너의 작업에 대한 겸허하면서도 열정적인 '태도'와
김영일 선생님의 자기 꿈에 대한 소신있는 추진력과 분명한 '태도',
모토엘라스티코의 새로운 시각과 창의적 실천, 여유로운 삶의 '태도'를 통해 깨닫는 부끄러움과 자기 반성에 이어
구룡에게는 특별히 이를 넘어선 '대각성(大覺醒)'의 순간이 열린 모양이었다.

한번 깨달음의 눈이 열리면 수많은 것들이 보이고 들리기 시작하는 법.
오늘 오전 시니어 라이프와의 회의 중에 일어난 동시다발적인 순간에서의
왕정민씨의 작은 행동을 통해 그는 놀라움과 부끄러움을 느낀 듯 그 말을 하고 또 한다.
회의 중에 온 전화에 답하기 위해 내가 비엔날레 사무실의 다용도실 겸 화장실로 잠시 자리를 피해 통화를 하는데
이 모습을 놓치지 않고 정민씨가 슬그머니 화장실의 불을 켜주었다.
아무에게도 아무런 생각을 일으킬 일이 결코 아닐 수 있었음에도
'눈이 열린' 구룡에게는 이러한 태도가 얼마나 큰 배움의 기회가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결국 저녁 내내 여형과 나는 구룡으로부터 이 이야기를 스무 번도 더 듣게 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런 사소한 일이 구룡에게 그토록 깊은 깨달음과 감동을 줄 수 있었는가.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는데, 우리가 애용하는 성대입구의 주점 '이씨네' 주인장과의 얼마 전 대화가
그에게 대각성의 첫 망치가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내친 김에 자리를 옮겨 '이씨네'를 찾았다.
(시간은 아직 8시도 안되었다..!)
이씨네의 명품 안주 '초절임 고등어'는 언제 먹어도 정말 변함없는 명품이다.
주종은 역시 막걸리로, 구룡의 대각성의 스토리는 이어진다.

얼마 전 이씨네에서의 술자리에서 이씨네 주인장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던 모양이다.
언제나처럼 구룡의 해박다식한 이야기가 펼쳐졌는데, 이를 한참 듣던 주인장의 말씀-
"그래서, 네가 하고싶은 이야기가 뭔데..?"
순간 그의 한 마디는 이십 칠팔년간을 의지해 왔던 구룡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았던 것이다.
"그.그......... 모르겠습니다."

하하..
이 순간 이후로 구룡에게는 새로운 시야가 열리고
무수한 부끄러움에 몸둘 바를 모르겠어도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터져나오는 기쁨이 그를 온통 사로 잡은 것이다..
(결국 여형과 나, 그리고 이씨네 주인장까지.. 우리는 저녁 내내 구룡으로부터 이 이야기를 스무 번도 더 듣게 된다..)



장마라고는 하나 예전과는 전혀 다른 패턴의 오락가락하는 비는 저녁 늦은 시간 엄청나게 퍼부어댔고
구룡의 대각성의 순간에 더할 나위 없는 감동을 보태주었다.
꽃의 개화의 순간을 목격한 듯 함께 자리한 사람들의 감동도 더할 나위 없다.

위대한 누군가의 생각으로 나의 생각을 대변하는 일은
나의 머리를 잠시 든든하게 할 수는 있겠으나
나의 눈과 나의 귀, 나의 가슴을 대신 열어줄 수는 없을 것이다.
누군가의 위대한 생각들로 점철된 나의 '앎'이
나의 존재를 설명해줄 수 없는 것처럼.

그러니 선택의 여지는 없다.
한없이 부족하고 한없이 가벼운 존재에 대한 깨달음과 반성을 토대로
스스로의 삶을 살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라고 말하려는 순간
소백산 봉철스님의 가르침이 나의 뒷통수를 호되게 내리친다.

'안다는 것(앎)은 오직 알지 못함을 아는 것이다..'




2009/07/02 23:15 2009/07/02 23:15


모토엘라스티코

baflog   2009/07/02 17:26



오늘은 거의 2시간 간격으로 회의가 있는 날이다.
4시반. 오후의 마지막 회의는 모토엘라스티코 팀과 비엔날레 전시디자인을
어떻게 도록에 소개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자리이다.
마르코와 시모네는 이태리 토리노 출신의 건축가들로
한국과 인연을 맺어 서울과 토리노를 오가며 디자인을 하고 있다.

종로 5가 광장시장을 끼고 돌아 청계천을 따라 늘어선 작고 오래된 건물의 하나에
모토엘라스티코의 사무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사무실 출입구가 누워('서'가 아니라) 있어
그 문을 '위로'('앞으로'가 아니라) 밀치면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삼각형으로 난 쓸모없는 공간을 디자이너만의 새로운 발상으로 전환,
네 코너 대신 세코너를 지닌 공간을 2개층 이어 작업공간으로 사용하고 있고
또한번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작은 놀이공간이 이어진다.
(현재는 드럼세트와 전신거울이 놓여있다.)
그 공간은 옥상의 작은 테라스 공간으로 이어지는데...
이곳에서 내려다 보는 전경은 그야말로 광장시장에 대한 그간의 고정관념을 대번에 깨버린다.
세느강은 저리가라 할만큼 멋진 청계천 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되는데
나로서는 서울에 그리 오래 살아도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그런 멋진 서울의 모습이다.
역시.. 이태리 출신다운 여유롭고 창의적인 시각으로
서울에 사는 디자이너로서는 상상도 못할 그런 공간을 찾아내어
멋진 창조의 산실을 마련한 것이다.

함께 회의에 참석한 여형과 구룡이 이 놀라운 광경에 휘황한 표정이 되었다.
하긴, 나도 처음에 그랬으니까..
^_^


 

2009/07/02 17:26 2009/07/02 17:26


보석 토마토

inamigination   2009/07/02 15:45


베란다 화분에서 자라던 방울토마토가 빨갛고 탐스럽게 익었다.
5월에 신한은행에서 고객들에게 선물로 주었던 토마토 모종을 얻어다
설희가 화분에 심어두었던 것인데
노란 꽃이 핀 후 콩알만한 파란 열매가 달리더니 어느새 빨갛게 익은 것이다.
조롱조롱 빗방울이 매달린 그 모습은 보석 중의 최고의 보석과 같다.
오직 한 줌 흙에 의지해 저토록 눈부신 결실을 이루어 내다니 대견하기만 하다.
난 아무 것도 해준 게 없는데..

2009/07/02 15:45 2009/07/02 15:45


비오는 아침의 '결정적인 순간'

inamigination   2009/07/02 09:55


오전의 첫 회의가 인사동 비엔날레사무실에서 있는 것을 빌미로
오랫만에 종로에서 바라보는 비오는 아침의 정취를 즐길 계획을 세워본다.
한 40분 가량 일찍 도착하여 아직 손님이 뜸한 던킨도너츠에서 커피와 베이글을 주문한다.
거리로 향한 창가에 앉아 최근에 읽던 책과 카메라를 꺼내든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기 전에 먼저 거리를 향해 대여섯장을 연속으로 눌러댄다.
물론 '찰칵' 소리는 나지 않는다.
사진을 찍는 이에게도 사진이 찍히는 이에게도
어떤 의미에서든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를 강조하는 것은
나의 사진찍기 작업에 위배가 된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무음' 모드를 절대적으로 선호한다.

순간과의 인연은 화면 속에 멋진 주인공을 만들고 멋진 레이아웃을 탄생시킨다.
나의 사진찍기는 화면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없이
찍고 싶은 순간에 가급적 여러 번 셔터를 눌러댄 후 그 중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고르는 빙식이다.
물론 트리밍이나 크롭은 하지 않는다.
순간과의 인연을 절대적으로 존중하기 때문이다.
사진이란 내게 기술이나 감각이 아니라
나의 손가락이 셔터를 누른 순간 카메라 프레임 속에 뛰어 들어 정지된 피사체들과의 인연이다.

후에 알고보니 나와 같은 방식으로 사진을 찍었다는 사람이 있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다.
물론 그도 알 것이다.
내가 그의 흉내를 내어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그가 말한 '결정적인 순간'이란 그만의 사진찍기 방식이 아니라는 걸.
사진을 찍다보면 누구나 공통적으로 발견하게 되는
사진찍기의 본질에 대한 그의 발견을 말한 것일 뿐이라는 걸.
 
커피도 좋고 크림치즈를 듬뿍 바른 베이글도 좋았다.
지난번 혼자만의 여행 때 시작하였던
너새네이얼 웨스트의 <미스 론리하트>를 좀더 진행하였는데
막 재미가 붙으려는 즈음에 책을 덮어야 했다.
회의시간 5분 전이다..


2009/07/02 09:55 2009/07/02 09: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