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자기계발 휴가

thinking   2009/12/17 11:48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는 나만의 자기계발 휴가
-thinking

2009년은 광주디자인비엔날레 때문에 나에게도 한동안은 바쁜 한해가 되었다. 8월부터 9월 중순까지 한달넘게 광주디자인비엔날레 도록을 만드는 작업을 하였다. 1,2주 동안 밤을 새고 야근을 하는것이 그리큰 부담은 없었으나 주말을 계속해서 나오고, 3주차에 접어들자 몸이 조금 이상 신호가 오기시작했다.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몸이 조금 상하는 것이야, 보람된 마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도록작업이 끝나고는 나를 위한 시간을 주자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그렇게 한달간의 철야작업이 끝나고 무사히 도록의 인쇄감리까지 마칠 수 있었다.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일주일간의 휴가를 내어 나스스로의 지친 마음을 달래 자기만의 "자기계발 휴가"를 가기로 했다.

9월15일부터 9월20일까지의 휴가중 2박3일간 계획을 잡고 동해안 쪽을 혼자서 여행하기로 했다. 영덕집을 바로가지 않고 대구와 포항을 들려, 그동안 만나보지 못한 사람과 친구들 그리고 예전에 다닌 고등학교를 방문하는 그리 대단치 않은 계획이었다. 그러나 2009년 한해동안 스스로 혼자 여행을 떠나기는 처음인지라 적잖은 기대가 되었다.

월요일 일산에서의 인쇄감리가 끝나고 시끄러운 인쇄기소리와 작별을 고하며, 다음날 아침부터의 혼자만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나 스스로의 여행, 오랜만의 KTX안은 마치 무정여행을 하듯 신났다. 내 주변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부산과 대구를 오가며 비지니스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거꾸로 여행을 가는 남쪽 노선에 몸을 실으니... 무언가 적잖은 기대감이 몰려왔다.


서울역
기차로 수없이 대구와 서울을 오가고 그림을 배우던 고등학교 수능이 끝난시절과 지금에 직장을 다니고 휴가차 내려가는 발길에는 미묘한 감정이 교차했다. 기차를 많이 타본지라 나에게 기차로 여행을 하는것은 차나 배, 비행기로 여행하는것에 비해 훨씬 재미를 배가시켜 준다. 배는 너무 느리고, 비행기는 너무 빠르다면 기차는 적당한 속도와 시간에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을 부여해준다. 물론 지금은 KTX가 있어 2시간이면 대구를 가지만, 무궁화호를 타고 4시간동안 서서갈때는 무궁무진한 생각을 했다. MP3와 동영상으로 시간때우는 지금에비해 그때가 그리운 것은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2시간동안 달린 KTX안의 시간은 한달간의 고된 시간을 정리하고 새로운 계획을 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대구
나에게 대구는 제2의 고향이자 10대시절을 채워준 충만한 공간이다. 거제도에서 태어나 영덕을 거쳐 대구, 그리고 지금의 서울로 크게 거점을 옮긴동안 대구만큼 가장 애정이 가고 추억이 많은 공간도 없다. 10대의 사춘기를 보낸 소위말하는 질풍노도의 시기가 배어있는 공간이다. 마치 태아가 자궁안에서 몸을 움츠리고 편안하게 잠을 자듯, 대구역에 바라본 대구의 풍경은 변함없이 따뜻했다. 2008년에 한번 내려가본 이후로 거의 일년만이다.


대구 - 중앙도서관
10대시절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공간은 대구에 있는 나의 고등학교와 중앙로라 불리는 시내의 도서관이다. 시간을 내어 먼저 중앙로에 있는 중앙도서관을 찾아갔다. 여기서 남상백이라는 친구는 독서클럽을 만들었고, 어느정도 겉다리로 문학을 즐기던 나에게는 녀석이 다니던 이 도서관이 적잖아 멋있어 보였다. 항상 어깨를 펴고 책을 읽던 녀석은 지금쯤 뭐하고 있을까? 다시찾아간 중앙도서관은 여전히 공무원의 냄새와 대구 시민들의 냄새, 그리고 친구 상백이가 읽다만 책들의 냄새로 기분좋은 여운을 남기고 있었다. 읽고 싶은 책은 모조리 읽고 시간을 보내도 배가 고프면 지하의 식당에 가면 저렴하게 밥도 먹을 수 있다. 어찌보면 국가에서 나에게 가장 큰 해택을 준것은 지금보면 이런 시립단위의 도서관인 것 같다. 근처에 공원도 있어, 문학소년이 꿈꾸는 공간으로 이상적이다. 상백이는 이 공간에서 독서클럽을 만든것이다. 그때만해도 그런 활동을 통해 다른 학교의 여자와 (남녀공학이 아니었으므로) 가장 건전하게 교류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속에서 많은 나의 또래들이 문학과 예술을 꿈꾸었을 것이다.


대구 - 경북고등학교
그러나 나에게 가장 큰 삶의 변화를 준 공간은 고등학교 도서관이다. 지금도 생각이 나지만, 한참 야구와 피구를 하며 무서운 식욕을 배출하던 10대시절, 친구가 친 테니스공이 굴러굴러 교내 뒷뜰 계단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경북고등학교는 대구에서 가장 큰 고등학교라, 왠만한 대학교만한 크기를 갖추고 있다. 때마침 흘러간 공은 그동안 내가 들어가지 못한 공간으로 흘러들어갔다. 그곳이 지금의 학교 도서관이 있는 곳이다. 야간 자율학습을 하는 건물외에 별도로 배치된 도서관은, 학교 외진곳에 위치해있어 왠만해선 들어가지 않았다. 소위 엄친아들만이 까끔 다니거나 정말 착한아이들이 드나드는 그런 공간이었다.

거의 5년만에 다시 찾은 고등학교 도서관은 그때 그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학생신분이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밖에서 본 건물은 그때 흘러간 테니스 공을 줍는 나를 보여주었다. 마치 영화처럼 그렇게 계단으로 굴러떨어진 공을 잡는 순간이 스르르 흘러갔다. 그때부터 알게된 이 도서관에서 나는, 피카소와 몬드리안, 마네등의 화가들의 그림을 전부 읽고 보았다. 사실 글을 잘 읽지못해 그림을 더 좋아했는지라 대부분 그림책위주로 읽었다. 그리고 그때 본 예술가시리즈에 꽂친 하드커버의 전집책이 내 삶을 변화시켜준 작은 계기가 되었는지는 그땐 미처 몰랐다. 사실 아직도 내가 왠만한 그림을보면 작가의 이름을 바로 떠올릴 수 있는것도 이때읽은 책 덕분이다.

아직도 생생한 그때의 하드커버책은 표지도 없는 순백의 백자같았다. 누런 미색의 표지를 넘기고 반뜻반뜻한 듀오매트에 찍힌 그림들은 생생한 컬러와 이미지로 나에게 그림의 세계를 안겨주었다. 특히 마티스가 인상적이었다. 그가 올려붙인 색종이는 달팽이가되고 악기가 되었다. 특히 "오세아니아 Oc?anie" 라는 그림이 그때 가장 인상적이었다. 푸르지도 또한 바다도 보이지않는 종이에서 드넓은 바다가 떠오르는 것은 나의 착각인가? 그때본 그림대로 거친그림보다는 무언가 유기적이고 기하학적으로된 그런류의 그림들이 더 좋아졌고, 자연히 지금의 디자인을 하게된 우연한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포항 - 죽도시장
그날밤 다시 넘어간 곳은 포항이다. 군대에 다니던 친구 동엽이가 사는 곳이다. 정말 오랫만에 다시 본다. 역시나 저녁에 대구에서 포항으로 총알로 가는 택시가 재맛이다. 택시아저씨 입답도 들을 수 있고, 무엇보다 버스로 두시간 거리를 한시간만에 주파한다. 말그대로 총알택시다. 여전히 동엽이는 포항에서 해맑게 잘살고있었다. 둘이만난 죽도시장이라는 곳에서 거하게 회한접시를 먹고는 아침일찍 바다를 보러가자고 했다. 역시 포항은 바다가 제맛이므로...

포항 - 월포해수욕장
포항하면 사람들은 포항제철과 포항스틸러스 그리고 포항공대를 떠올린다. 전부 무슨 공대와 엔지니어 분위기다. 사실 포항에 내리며 보는 포항제철의 큰 공장과 기계를 보면 틀린말은 아니다. 그러나 동엽이와 같이간 바다는 정말 차분하고 평온했다. 월포해수욕장은 포항에서 바다보기 유명한 곳이다. 생각보다 평온한 가을의 바다를 보고있으니 정말 마음이 차분해졌다. 드넓은 바다위에서 남자둘이서 수다를 떨자니 게이로 보일까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했다. 녀석과는 군대를 같이다녀서, 물론 그때는 나의 고참이었지만... 가장 잘해주고 챙겨준 놈이라 아직도 깊은 정이간다. 지금은 둘이서 민간인이되어 바다를 보지만, 6년전에 바라본 바다는 최악이었다. 내인생의 바다는 절반이 군대에서 본것이다. 포항은 그래서 좋지만, 그리 좋지만은 않은 그런 바다다.

혼자만의 여행에서 친구를 만나, 바다를 보고있으니 마음이 편해진다. 갈메기 소리와 바다 냄새, 무엇보다 모래를 밝을 수 있다는 것이 좋다. 서울은 정말 시간과 돈이 교차하는 전쟁같은 곳이지만 이런곳에 나와 눈을 감으면 정말 자유로워진다. 지나간 나의 시간들은 발가락 사이로 들어온 모래와 바닷물로 인해, 다시 현재로 흘러들어왔다.


영덕 - 부모님의 집
동엽이와 하루를 바다와 보내고, 녀석의 고민과 나의 고민도 들으면서 아직 20대의 젊음에 기쁨을 느꼈다. 그리고 그런 순간을 뒤로하고 3일째되는날, 동엽과 헤어져 최종목적지인 영덕 부모님댁으로 돌아갔다. 서울에서 영덕으로 직행으로 간 순간보다, 이렇게 혼자생각하고 친구를 만나고 돌아가는 이 시간이 더 짧아보이는 것은 왜 그런것일까? 이틀간의 짧은 일정속에서 시간은 정말 버스안의 시간보다 더 짧고 더 재미났다.

그렇게 잠시나마의 나만의 방황기?를 뒤로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 어머니는 내가 무엇을 했는지 어떻게 사는지 정확히는 모르신다. 그러나 언제나 나는 아들이고 철부지인 느낌으로 부모님을 만나러간다. 항상 그래왔듯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부모님을 만난다. 언제나 걱정이 없냐며 물으시면 "괜찮아요" 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그런 언제나가 지금도 그런다. 하지만 되돌아간 이틀간의 여행속에서 지난날을 뒤돌아보며 맞이하는 괜찮아요는 다른다. 모양과 형태와 소리가 같더라도 분명 무언가 변하는 순간을 느낀다. 사람이란 그런 변화들이 축적된 기억의 동물이 아닐까? 나는 무언가 계발을 하기보다는 이런 과거들을 다시 주워담는 노력을 하는 사람이 되고싶다.

마티스의 오세아니아는 어쩌면 그런 기억의 조각이 아니었을까?



marcos novak

thinking   2009/11/24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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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architect- 마르코스 노박

마르코스 노박의 강의가 2009년 11월 23일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열렸다. 강의의 주제는 딱 한단어로 설명할수없을만큼 다양한 관점의 생각들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내가 본 강의의 가장 큰 핵심은 "트랜스trans"이다. 건축을 소재로 예기를 하자면, 과거의 건축이 "주거하는 기계"라는 르코루뷔지에의 모던니즘적인 사고에서, 영국의 혁명적인 그룹 아키그램의 "움직이는 건축"에서 한단계 진일보한 "변형하는 기계"처럼 끊임없이 그 형태를 변이, 변증하는 방식들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Bio시대에 걸맞는 자가증식의 모습을 보여주는 개념들이 이번 강의에서 나타났다. 딱히 건축이라 정의를 할 필요없이 노박의 강의는 사회전반의 문화,예술의 현상을 두루 섭려해주는 해안을 보여주었다.

그중 가장 가슴에 와닿은 것은, 기차가 선로에 이탈한다는 뜻의 "derail·ment"이다. 가끔 지하철이 탈선하는 끔찍한 꿈을 꾸지만 그런 두려움을 극복하고 다른 노선을 택하는 것이, 새로운 것을 하는 출발점이 될것이다. 예를들어 건축과 음악이 만나 "ArchiMusic"이라는 신조어가 되듯이 다른 분야의 것이 만나 새로운 현상과 파장을 일으킬수있다. 그러나 이러한 만남도 두축의 만남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한다. 만약 이둘이 만나 전혀다른 무엇이 나온다면 그것은 음악과 건축도 아닌 새로운 변종의 무엇이 나올것이다. 이렇듯 두가지 다른 분야의 축들의 X자 만남의 선로를 벗어나는 것- "derail·ment"이다.

건축을 전공해서 건축만 열심히해도 건축가로 살아갈 수 있다. 음악을 전공해서 음악만 열심히해도 음악가가 될 수있다. 그러나 그이상은 될수없다. 또는 음악과 건축이 만나 새로운 것을 하더라도 그 새로움이라는것이 두개의 만남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그것또한 그 상태에서만 새로운 한계를 보일것이다. 우리가 하는 일이 두가지 축들을 만나 전혀 새로운 분야로 뛰어넘듯이, 새로운 분야와 생각으로 건너뛸수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노박은 이러한 다양한 분야의 것들이 만나 접점을 이루는 균형을 지혜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더 궁극적인 상태가  "Beauty"이다. 그냥 우리가 예쁘다고 표현하는 그런 단어의 Beauty가 철학의 궁극적인 형태로 사용되어지자, 나는 사뭇 내가 사용하는 단어와 의미들에 너무 일차적인 교감만 하고있다는 반성을 하게되었다. 역으로 이러한 한계를 벗어던지고 지금 내각 사용하는 단어의 의미와 그 뜻을 보다 넓은 의미로 확장해서 이해한다면 노박이 말한 "derail·ment"를 할수있지 않을까?라는 호기심이 생겼다.

이번 노박의 강의는 어려운 건축의 내용을 건축만의 용어로 보여주지않고, 그의 넓은 관심과 이해의 폭에 걸맞게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할 수있는 사고의 철학적인 부분을 알려주었다. 누구나 지금의 시대가 통합과 통섭의 시대라고 얘기는 하지만, 어떻게 그것을 경험해야하고 해야하는지 제대로 그 방식을 이해하고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이문제는 전공자에게 끝나는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선생님과 학생의 문제로 이어지기때문에 누구를 가르친다는 교육에 몸을 담고있는 사람들이라면, 더 신중히 반성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과연 서로 다른 언어로 배움을 해온 사람들이 여러분야의 것을 하게됨에따라 서로다른 언어로 얘기하는 충돌을 어떻게 교육할것인가?"라는 질문에 노박은...

"어떤 한 학생이 자신은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고 악기도 다루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음악을 만드냐고 나에게 말했다. 그러나 너가 음악을 하지않았다고 하더라도, 왜 사람들이 소리에 반응하고 음악을 듣는지를 생각해보라고 나는 얘기했다. (중략)"

이 부분에서 나는 서툰 영어실력으로 들리는 문장하나하나에서 조금씩 흥분이 되었다. "소리에 반응을 한다." 이것은 내가 음악이 무엇이다 규정을 짓고, 디자인은 무엇이다 규정을 지음으로해서 전공을 만들고 구분을 짓는 경계짓기에서 벗어나 무언가를 정말 생생하게 맞닿뜨리는 어린아이의 자세를 보여주었다. "rare" 한것...

굳이 다른 분야의 전문용어나 이해의 범주를 가지고오지 않다라도, 무엇을 같이한다는 것은 이러한 생생한 반응의 자세에서 서로 연결되지 않을까?라는 확신이 들었다. 지금 내가 하고있는 디자인이라는 분야도 내가하는 분야로만 한정해버림으로써 무한한 가능성을 닫아놓아버린 것이다. 처음에 우리가 무엇을 만날때 느끼는 호기심과 생생함은 어느새 사라져버리고 일상에 젖어 살아가기 바빴다.

마르코스 노박의 강연은 그런 나에게, 건축의 언어로 집을 어떻게 짓느냐라는 생산적인 질문이 아닌, 사람의 몸의 언어로 어떠한 집이라도 지을 것을 권하는 희망적인 질문이었다. 이번 강연은 그동안 갇힌 나의 생각과 경험의 폭을 새로운 방향으로 넓혀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 멋지게 기차길을 벗어날 차례이다. 희망적인 탈선?을 위해서...

-마지막 질문에 노박은 이런말을 했다.
"코끼리가 어렸을때는 작은 막대기가 무서워 우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코끼리는 어른이 되어도 막대기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 막대기에 길들여져 어렸을때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 주위에도 그런 막대기가 있다. 그것을 벗어던지면 정말 그 막대기가 작은것을 알게될것이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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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스 노박의 홈페이지
http://www.mat.ucsb.edu/~marcos/Centrifuge_Site/MainFrameSet.html





Transformer

thinking   2009/05/15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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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ADA-TRANSFORMER
DESIGN Ram Koolhass
Brand & Editorial  Design 2 X 4

램쿨하스와 AMO/OMA가 또한번 일을 저질렀다. 에스콰이어와 패션지에서 이동하는 건축을 선보인다는 소식을작년에 언뜻 들은듯했는데 이미 3월부터 한국 경희궁에 설치를 했다. 패션에 대해 그리 관심이 없던 나에게도 램쿨하스라는 사람과 프라다는 최고와 최고라는 감탄사가 붙어있는 존재들이었다.

시대는 이제 모든 것을 통합하고 변화하는 유기적 생명체의 시대로 접어든 느낌이었다. 건축마저 예전의 파빌리온의 경우는 한전시를 위한 하나의 천막같은 낮은 수준에서 미스반데어로에의 바로셀로나 파빌리온과 같은 구축적인 모더니즘 공간이 생기면서, 전시공간의 수준도 한곁 업그레이드 되었다. 그런 와중에 이번 램쿨하스의 트랜스포머는 변화하는 파빌리온이라는 컨셉에 맞추어 일본식 주사위 놀이에 영감을 얻은 재미난 발상들이 보인다. 실제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주사위를 굴리듯 위의 파빌리온이 앞으로 이동하면서 바닥이 천장이 되고, 옆면은 또 바닥이 되는 전복을 일으킨다. 상하의 개념이 없어지고 바닥과 천장의 개념이 없어지는 것이다. 이는 마치 하나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생명을 갖듯 변화하는 형태로의 전진같았다.

그리고 수많은 디자이너와 건축가가 패션회사와 일했지만 유독 램쿨하스와 미우치아 프라다의 인연은 초미의 관심이 되어버릴 수 밖에 없는 천재들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남다른 관심이 갔다. 실제 이 전시는 떡하니 나온것이 아니라 2000년대부터 꾸준히 협력해온 프라다와 램쿨하스의 OMA사무소의 인연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미 뉴욕의 프라다 매장은 바닥이 자연스레 계단으로 변하고 1/2층의 공간의 나눔이 아닌 1/1.5/2층의 나눔식의 새로운 분절을 일으키며 경험하는 이의 발목을 잡는다. 패션숍이 단순히 옷만 파는 공간이 아니라 옷을 경험하고 그것이 놓인 공간과 함께하는 경험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에 AMO라는 전략기획실에서 모든 브랜드 컨설팅을 해주고있으며, 우리가 잘아는 2 x 4나 댄마이클슨등의 천재적인 디자이너들이 프라다매장의 시각적인 경험들을 책임지고 있다. 유독 프라다가 이러한 최첨단 건축과 디자이너들과 어울리는 이유는 구찌나, 베르사체, 루이비통식의 클래식함을 벗어버리고 첨단 소재와 실험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기업의 색깔도 한몫을 하는 것 같다.

실제 프라다와 램쿨하스의 작업들을 2000년대부터 지켜보면 모든 면에서 최첨단을 달리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트랜스포머의 경우에도 파빌리온의 개념을 4가지 주제에 맞추어 4가지 변주의 공간으로 끌어왔다는데 발상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내가 램쿨하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건축능력도 있겠지만 주제의 해석능력에서 스토리를 해석하고 컨셉화시키는데 가장 돋보적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건축가들은 자신의 철학과 건축언어에 큰 상징을 부여하지만 램쿨하스는 그러한 철학과 상징 언어가 없다. 굳이 그것을 만들려고하지 않는다. 그냥 유행을 쫓듯 그시대의 문화적 현상의 고민들을 스토리와 건축의 언어로 풀어나간다. 마치 놀이를 하듯 그의 건축을 보면 과거 르꼬르뷔지에나 프랭클린 로이드 라이트처럼 심각한 철학이 있다기 보다는 하나의 패션잡지를 보는 느낌이다. 그것은 그가 어떠한 자신의 얘기보다도 주어진 주제의 해석에 따른 그때그때의 변화에 기인할 것이다. 실로 그의 건축들을 보고있으면 어떤 하나의 스탕일로 얘기하기도 어렵다.

이번 프라다/ 트랜스포머 전시는 그런면에서 전시의 주제와 건축의 형태가 하나로 연결되어있는 컨셉의 승리라고 보고싶다. 브랜드와 편집을 맡은 2 x 4도 편안히 작업을 했을 것이다. 워낙 컨셉이 명확하기 때문이니...  어찌되었든, 21세기 통합의 시대에 스토리에 대한 해석능력과 그것을 자신들의 전공 언어로 컨셉화 시키는 능력을 이제 필수능력이 되었으며 뿐만아니라 그 어떤 분야에도 벗어날 수 없는 필수사항이 되어버린 듯 하다. 가끔 드라마를 보거나 영화를 볼때에 이야기의 플롯을 보고나면 소름이 끼칠정도로 몰입하게 만드는 것을 볼 수 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시학이 몇천년이 흐른 지금에도 유효한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이야기를 듣고싶어하고 그것이 그래픽이 되었든, 건축이 되었든 그들이 말하는 것을 쉽고 재미있게 듣기를 원한다.

이번 트랜스포머 전시는 그런 나에게, 건축과 패션이전에 너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냐는 본질적인 질문을 다시금 새롭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미우치아 프라다여사! 램쿨하스! 시크~



[Anatomy on Me] 내가 좋아하는 것 100가지

thinking   2009/02/02 09:34
[Anatomy on Me] 내가 좋아하는 것 100가지
내가 좋아하는 것 100가지와 타인의 좋아하는 것 100가지의 관계를 통해 내가 어떻게 사회에서 관계를 맺으며 존재하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프로젝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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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변 친구와 지인들에게 '좋아하는 것 100가지'를 적어달라는 부탁을 이메일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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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총 35개의 메일중 32개가 전달되었고, 18명이 거부하고 그 중 5명이 보류, 나머지 14명이 승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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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도착한 데이터를 4가지 단위로 분류(1. 순서 뜻 일치, 2. 뜻 일치, 3.유사, 4.불일치) 하였으며, 각각의 순서에 맞게 색깔을 적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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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중 '김다정'씨가 유일하게 100% 일치하는 1등급 CYON 컬러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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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빈도순으로 일치하는 것을 정리해보았습니다. 뜻이 일치하는 것 중엔 책이 가장 많이 나왔고 그다음이 타이포그래피입니다. 유사한것으로는 카페와 커피, 아이팟이 많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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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저와 일치하는 것들중에 그 거리를 바탕으로 선을 이어보았습니다. 뜻은 일치하지만 그 거리는 멀어보이는 참가자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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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김정란씨가 뜻이 일치하는게 8개, 유사한 것이 4개로 저와 가장 일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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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총 1410개의 조각중에 69.5개가 일치하였습니다. (한사람이 110개를 보냈습니다. 그래서 일치하는 것 한가지를 0.5로 계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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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4명의 사람중에 저와 100가지가 일치할 확률은 4.96%입니다.


결론
나를 분석해 보면 내가 좋아하는 주관적인 부분들도 다른이와의 관계를 통해 어느정도 객관적인 부분에서 그 의미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결국 나라는 존재는 다른이와의 관계속에 함께 존재하고 있습니다.

스튜디오바프 엠티2

thinking   2008/08/06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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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ioBAF 남도여행기 파트2
"용성선배 조심해요, 돌 떨어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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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2부는 이런 언짢은 자세로 시작합니다. 어제 술을 무지 먹은 바프식구들은 간단 정리와 짐을 꾸려 유선여관을 나와 헐레벌떡 대흥사에 가기로 했습니다. 이팀장님이 끈질기게 일어나지 않아, 이팀장님빼고 모두들 신나게 고고싱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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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물

연꽃이 활짝 핀 대흥사 절의 연못(무염지)을 지나지나, 어제의 술로 찌든 마음을 이겨내기 위해 바프식구들은 산행을 감행하기로 합니다. 대흥사 위로 길게 이어진 두륜산의 정기를 받아, 흡사 부처님의 좌상을 닮은 봉우리를 향햐 바피식구들은 겁바 험한 산행을 하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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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달팽이를 만나, 가는 도중 자연의 신비로움에 감탄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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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길 초입에 있던 시원한 약수물을 마시며, 어제 먹은 남도의 음식을 깨끗이 정화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때마침 한모금 마시려는데, 여자 선배들이 못살데 굴어 셔츠랑 옷이 젖어버렸습니다. 된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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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일지암을 지나는 순간부터 조금씩 길이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정팀장님 때문이 아닐까? ^^ )  여튼 길을 계속 오르고 있는 바프 식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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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고생을 한 우리들은 산을 오르는것이 아니라, 암벽을 타는 심정으로 어찌어찌하여 천년수를 만났습니다.  느티나무과에 속하는 희구한 나무인데, 다름아닌 오백년은 족히 넘을 것 같은 크기와 그에따른 전설이었습니다.  하늘에서 벌을받아 떨어진 남녀가 서로 불상을 만들어 결국은 극락으로 오른다는 불교의 일화가 있는데, 남자는 그만 입상을 만들어 다 만들지못하고, 좌상을 만든 여자만이 하늘나라로 다시 올라간다는 얘기였죠. 그 입상이 천년수가 되었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런 신비로운 일화부터 크기가 꼭 아마존의 밀림에서 볼 것 같은 나무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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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어찌하여 드디어 두륜봉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오르는 순간 안개가 눈앞을 가렸습니다. 약수물담으로 안개를 먹어서 그런지 힘이 솟았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건 안개가 아니라 구름이었습니다. 꾀 높이 올라간 바프식구들은 구름이 산을 지나 안개처럼 보이는 멋진광경을 보고 다들 할말을 잃을뻔 했습니다. 솔직히 힘들어서 그닥 멋지다는 느낌보단, 어찌해서 올라왔구나의 보람이 더 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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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결합된 '화상시대' 타이틀곡 "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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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올라온다고 수고하셨습니다. (선배님들 정말 북한에 효도 관광온 아줌마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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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나이는 속이지 못하는것 같습니다. 힘들어하시는 정팀장님과 대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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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수고하신 실장님! 수고하셨습니다. (마치 실장님의 멘트가 떠오릅니다. "봤지? 봤지?" 이말은 실장님이 뭔가 자랑하고 싶을때 하시는 2단콤보 감탄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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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바프예요!"


(3편에서 계속)

스튜디오바프 엠티

thinking   2008/07/10 17:58

studioBAF 남도여행기 파트1

"아줌마 홍어 더 주세요"




라면
-스튜디오바프

7월 3~5일 2박3일간 스튜디오바프 식구들이 전라도 해남으로 엠티를 갔습니다. 전야제로 술을 먹고 아침까지 헬렐레한 저는 오자마자 라면부터 먹었구요, 정팀장님과 이팀장님은 미리 와서 렌트카를 보고있었습니다. 지영선배와 용성선배는 꽃단장?하고 있었구요. 지혜선배가 젤 늦게와서 다행히 라면 천천히 먹을 수 있었습니다.




만두, 트스트
-합정 삼포만두, 세븐일레븐

초반부터 만두며, 토스트며 합정에서 실장님 픽업하기전에도 계속 먹은 지영선배, 용성선배, 대리님 그리고 저는 엠티끝까지 식도락에 대한 집착을 놓지않아 언제나 대리님을 줄줄 따라다녔습니다. 마치 장보는 엄마에게 핫도그 사달라는 심정으로 말입니다.








도토리묵
-유선여관

무엇보다 5시간넘게 달려 도착한 해남에서의 스타트는 힘들어보였지만 유선여관에서 짐을 풀자마자 먹은 도토리묵에 모두들 뿅~ 가버렸습니다. 알딸딸하게 동동주를 마시며 이제야 밖으로 나왔구나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술이 남아 아쉬움을 달래는 찰나, 주인 아줌마가 '밥먹을께 너무 많이먹지 말어' 라며 나물 안주를 주시는 센스에 동동주를 그윽하게 다 먹을 수 있었습니다. 저번에도 바프식구들이 왔던 유선여관은 경치도 경치지만 남도의 맛과 멋을 느낄 수 있어 경상도에서만 자란 저에겐 허벌나게?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바프 식구 모두들 한자리에모여 처마아래 앉아 사진을 찍으니 간지?가 났습니다. 변화속에 바프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모든 동료 선배님들에게 한장의 사진은 티핑포인트가되어 새로운 방향전환의 순간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들은 앞으로 다가올 불행을 알지못한채 해맑게 웃고있다 - - ;

안습 - - ;


맨날 오늘만 같아라!

홍어
-유선여관

물놀이를 하며 잃어버린 FIFA슬리퍼와 함께 젖어버린 옷을 말리면서 저녁에는 다들 남도 한정식을 먹었습니다. 처음엔 상 크기에 놀랐고, 두번째는 음식 수에 놀랐고, 세번째는 맛에 놀랐습니다. 처음먹은 홍어는 먹는 순간, 변기에 빠져 훌러덩 코가 담긴 푸세식 화장실이 떠올랐습니다. 마치 과학실의 암모니아수가 코의 점막에 미묘하게 결합하여 뇌관을 타고 시상하부를 멤돌며 아드레날린을 분비하는 것 같았습니다. 뭐랄까? 카타르시스가 올라와 처음먹는것에 비해 와방? 땡겼습니다.

삽합은 이 중에서도 거의 맛의 삼위일체를 보여주는 예술이었습니다. 홍어와 돼지고기 그리고 김치, +@로 새우마저 들어가면, 새우와 돼지고기의 궁합속에 슬며시 암모니아수가 코끝을 간지럽히며 눈을 뜨게 해줍니다. 바프식구모두 다들 홍어를 좋아해 경쟁자가 많았습니다. 정팀장님의 홍어는 맛이 더 강렬한지라 감칠맛이 돌았습니다.




내 생애 최고의 순간




와인
-유선여관

그러나 역시 바프의 맛은 와인입니다. 홍어와 남도의 맛은 와인에 젖어들어 후반 게임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정팀장님이 준비한 게임들은 그닥 재밌을것? 같지 않았는데 하고보니 이성을 잃어버렸습니다. 모나미 볼펜 두개로 이렇게 손에 땀을 지게 하다니... 그러나 지영선배의 두툼한 볼살아래에 점을 그리고 나니,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실장님은 팬더가 되고, 팀장님은 20세기소년의 '친구'가  되고, 이팀장님은 병원 해부학 얼굴처럼 바뀌었습니다. 생쥐가된 대리님, 검은 콩이 그려진 지혜선배.... 그러나 용성선배 얼굴을 그리지 못한것이 아쉬웠습니다. 그렇게 다들 새벽이 넘게 그리고 게임하고 마시고 화도내고 웃고... 놀았습니다.

(다음에 계속)








북 디자이너-이나미

thinking   2008/05/09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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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디자이너
북디자이너-이나미
http://www.mgoon.com/view.htm?id=1507995


이나미 실장님이 디자인&디자이너라는 프로그램에 나왔습니다. 촬영도 좋았지만 편집을 잘해주셔서 매끄러운 영상이 만들어 진 것 같습니다. 지혜선배는 최대출현?하는 영광을 얻었고 바프의 공간이 카페처럼 아름답게 나와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실장님을 필두로해서 앞으로 많은 디자이너들이 소개되어, 일반인들에게 디자인의 의미를 새롭게 조망하는 자리로 거듭났으면 합니다.






리빙디자인페어-디자이너의 방, 이나미

thinking   2008/05/03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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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의 방, 이나미
<디자이너의 머릿속을 닮은 방>
Seoul Living Design Fair 2008

creative director
    이나미
designer
    정연중
    김지혜
    김용성
    연지영
    강구룡

서울 리빙 디자인페어 2008전시가 3월20일부터 3월 24일까지 코엑스 대서양홀에서 열렸습니다. 디자이너의 방이라는 주제를 '디자이너의 머릿속을 닮은 방'이라는 제목으로 스튜디오바프 식구들이 모여 작업을 하였습니다. 팀장님은 설치를 하시고 용성 선배는 천을 붙여 만들고, 바프식구 모두와 저랑 지영선배는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지혜선배는 영상을 편집했고, 이나미 실장님의 지휘아래 디자이너의 머리속을 보여줄 영상을 제각각 찍으러 다녔습니다. 수많은 천을 통해 쏘아지는 영상에는 디자이너의 작업모습과 컴퓨터 화면의 오류등등 디자이너의 일상에서 보이는 수많은 비주얼과 텍스트의 레이어들이 전시공간을 메우게 되었습니다.

그래 픽 디자이너들에게 이러한 전시 경험은 평면적 생각을 넘어 또다른 생각의 공간을 마련해 주어 의미가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제품 디자이너들이 사물과 설치공간을 훌륭하게 만들어 놓는 반면, 왜 그러한 설치 공간이 나왔는지에 대한 컨셉에서 약한 점이 있었습니다. 반면 그래픽 디자이너는 메세지와 컨셉 능력은 좋으나 한편으론 제품디자이너들과 같은 입체적인 생각, 재료 선택, 공간 활용 능력에서 약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원래 디자인은 하나인데, 미디어에 묶여 다양한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지만 이번 기회로 보다 다양한 접근으로 생각을 할 수 있게되어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