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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7 2009년 자기계발 휴가 (1)

2009년 자기계발 휴가

thinking   2009/12/17 11:48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는 나만의 자기계발 휴가
-thinking

2009년은 광주디자인비엔날레 때문에 나에게도 한동안은 바쁜 한해가 되었다. 8월부터 9월 중순까지 한달넘게 광주디자인비엔날레 도록을 만드는 작업을 하였다. 1,2주 동안 밤을 새고 야근을 하는것이 그리큰 부담은 없었으나 주말을 계속해서 나오고, 3주차에 접어들자 몸이 조금 이상 신호가 오기시작했다.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몸이 조금 상하는 것이야, 보람된 마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도록작업이 끝나고는 나를 위한 시간을 주자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그렇게 한달간의 철야작업이 끝나고 무사히 도록의 인쇄감리까지 마칠 수 있었다.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일주일간의 휴가를 내어 나스스로의 지친 마음을 달래 자기만의 "자기계발 휴가"를 가기로 했다.

9월15일부터 9월20일까지의 휴가중 2박3일간 계획을 잡고 동해안 쪽을 혼자서 여행하기로 했다. 영덕집을 바로가지 않고 대구와 포항을 들려, 그동안 만나보지 못한 사람과 친구들 그리고 예전에 다닌 고등학교를 방문하는 그리 대단치 않은 계획이었다. 그러나 2009년 한해동안 스스로 혼자 여행을 떠나기는 처음인지라 적잖은 기대가 되었다.

월요일 일산에서의 인쇄감리가 끝나고 시끄러운 인쇄기소리와 작별을 고하며, 다음날 아침부터의 혼자만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나 스스로의 여행, 오랜만의 KTX안은 마치 무정여행을 하듯 신났다. 내 주변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부산과 대구를 오가며 비지니스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거꾸로 여행을 가는 남쪽 노선에 몸을 실으니... 무언가 적잖은 기대감이 몰려왔다.


서울역
기차로 수없이 대구와 서울을 오가고 그림을 배우던 고등학교 수능이 끝난시절과 지금에 직장을 다니고 휴가차 내려가는 발길에는 미묘한 감정이 교차했다. 기차를 많이 타본지라 나에게 기차로 여행을 하는것은 차나 배, 비행기로 여행하는것에 비해 훨씬 재미를 배가시켜 준다. 배는 너무 느리고, 비행기는 너무 빠르다면 기차는 적당한 속도와 시간에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을 부여해준다. 물론 지금은 KTX가 있어 2시간이면 대구를 가지만, 무궁화호를 타고 4시간동안 서서갈때는 무궁무진한 생각을 했다. MP3와 동영상으로 시간때우는 지금에비해 그때가 그리운 것은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2시간동안 달린 KTX안의 시간은 한달간의 고된 시간을 정리하고 새로운 계획을 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대구
나에게 대구는 제2의 고향이자 10대시절을 채워준 충만한 공간이다. 거제도에서 태어나 영덕을 거쳐 대구, 그리고 지금의 서울로 크게 거점을 옮긴동안 대구만큼 가장 애정이 가고 추억이 많은 공간도 없다. 10대의 사춘기를 보낸 소위말하는 질풍노도의 시기가 배어있는 공간이다. 마치 태아가 자궁안에서 몸을 움츠리고 편안하게 잠을 자듯, 대구역에 바라본 대구의 풍경은 변함없이 따뜻했다. 2008년에 한번 내려가본 이후로 거의 일년만이다.


대구 - 중앙도서관
10대시절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공간은 대구에 있는 나의 고등학교와 중앙로라 불리는 시내의 도서관이다. 시간을 내어 먼저 중앙로에 있는 중앙도서관을 찾아갔다. 여기서 남상백이라는 친구는 독서클럽을 만들었고, 어느정도 겉다리로 문학을 즐기던 나에게는 녀석이 다니던 이 도서관이 적잖아 멋있어 보였다. 항상 어깨를 펴고 책을 읽던 녀석은 지금쯤 뭐하고 있을까? 다시찾아간 중앙도서관은 여전히 공무원의 냄새와 대구 시민들의 냄새, 그리고 친구 상백이가 읽다만 책들의 냄새로 기분좋은 여운을 남기고 있었다. 읽고 싶은 책은 모조리 읽고 시간을 보내도 배가 고프면 지하의 식당에 가면 저렴하게 밥도 먹을 수 있다. 어찌보면 국가에서 나에게 가장 큰 해택을 준것은 지금보면 이런 시립단위의 도서관인 것 같다. 근처에 공원도 있어, 문학소년이 꿈꾸는 공간으로 이상적이다. 상백이는 이 공간에서 독서클럽을 만든것이다. 그때만해도 그런 활동을 통해 다른 학교의 여자와 (남녀공학이 아니었으므로) 가장 건전하게 교류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속에서 많은 나의 또래들이 문학과 예술을 꿈꾸었을 것이다.


대구 - 경북고등학교
그러나 나에게 가장 큰 삶의 변화를 준 공간은 고등학교 도서관이다. 지금도 생각이 나지만, 한참 야구와 피구를 하며 무서운 식욕을 배출하던 10대시절, 친구가 친 테니스공이 굴러굴러 교내 뒷뜰 계단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경북고등학교는 대구에서 가장 큰 고등학교라, 왠만한 대학교만한 크기를 갖추고 있다. 때마침 흘러간 공은 그동안 내가 들어가지 못한 공간으로 흘러들어갔다. 그곳이 지금의 학교 도서관이 있는 곳이다. 야간 자율학습을 하는 건물외에 별도로 배치된 도서관은, 학교 외진곳에 위치해있어 왠만해선 들어가지 않았다. 소위 엄친아들만이 까끔 다니거나 정말 착한아이들이 드나드는 그런 공간이었다.

거의 5년만에 다시 찾은 고등학교 도서관은 그때 그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학생신분이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밖에서 본 건물은 그때 흘러간 테니스 공을 줍는 나를 보여주었다. 마치 영화처럼 그렇게 계단으로 굴러떨어진 공을 잡는 순간이 스르르 흘러갔다. 그때부터 알게된 이 도서관에서 나는, 피카소와 몬드리안, 마네등의 화가들의 그림을 전부 읽고 보았다. 사실 글을 잘 읽지못해 그림을 더 좋아했는지라 대부분 그림책위주로 읽었다. 그리고 그때 본 예술가시리즈에 꽂친 하드커버의 전집책이 내 삶을 변화시켜준 작은 계기가 되었는지는 그땐 미처 몰랐다. 사실 아직도 내가 왠만한 그림을보면 작가의 이름을 바로 떠올릴 수 있는것도 이때읽은 책 덕분이다.

아직도 생생한 그때의 하드커버책은 표지도 없는 순백의 백자같았다. 누런 미색의 표지를 넘기고 반뜻반뜻한 듀오매트에 찍힌 그림들은 생생한 컬러와 이미지로 나에게 그림의 세계를 안겨주었다. 특히 마티스가 인상적이었다. 그가 올려붙인 색종이는 달팽이가되고 악기가 되었다. 특히 "오세아니아 Oc?anie" 라는 그림이 그때 가장 인상적이었다. 푸르지도 또한 바다도 보이지않는 종이에서 드넓은 바다가 떠오르는 것은 나의 착각인가? 그때본 그림대로 거친그림보다는 무언가 유기적이고 기하학적으로된 그런류의 그림들이 더 좋아졌고, 자연히 지금의 디자인을 하게된 우연한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포항 - 죽도시장
그날밤 다시 넘어간 곳은 포항이다. 군대에 다니던 친구 동엽이가 사는 곳이다. 정말 오랫만에 다시 본다. 역시나 저녁에 대구에서 포항으로 총알로 가는 택시가 재맛이다. 택시아저씨 입답도 들을 수 있고, 무엇보다 버스로 두시간 거리를 한시간만에 주파한다. 말그대로 총알택시다. 여전히 동엽이는 포항에서 해맑게 잘살고있었다. 둘이만난 죽도시장이라는 곳에서 거하게 회한접시를 먹고는 아침일찍 바다를 보러가자고 했다. 역시 포항은 바다가 제맛이므로...

포항 - 월포해수욕장
포항하면 사람들은 포항제철과 포항스틸러스 그리고 포항공대를 떠올린다. 전부 무슨 공대와 엔지니어 분위기다. 사실 포항에 내리며 보는 포항제철의 큰 공장과 기계를 보면 틀린말은 아니다. 그러나 동엽이와 같이간 바다는 정말 차분하고 평온했다. 월포해수욕장은 포항에서 바다보기 유명한 곳이다. 생각보다 평온한 가을의 바다를 보고있으니 정말 마음이 차분해졌다. 드넓은 바다위에서 남자둘이서 수다를 떨자니 게이로 보일까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했다. 녀석과는 군대를 같이다녀서, 물론 그때는 나의 고참이었지만... 가장 잘해주고 챙겨준 놈이라 아직도 깊은 정이간다. 지금은 둘이서 민간인이되어 바다를 보지만, 6년전에 바라본 바다는 최악이었다. 내인생의 바다는 절반이 군대에서 본것이다. 포항은 그래서 좋지만, 그리 좋지만은 않은 그런 바다다.

혼자만의 여행에서 친구를 만나, 바다를 보고있으니 마음이 편해진다. 갈메기 소리와 바다 냄새, 무엇보다 모래를 밝을 수 있다는 것이 좋다. 서울은 정말 시간과 돈이 교차하는 전쟁같은 곳이지만 이런곳에 나와 눈을 감으면 정말 자유로워진다. 지나간 나의 시간들은 발가락 사이로 들어온 모래와 바닷물로 인해, 다시 현재로 흘러들어왔다.


영덕 - 부모님의 집
동엽이와 하루를 바다와 보내고, 녀석의 고민과 나의 고민도 들으면서 아직 20대의 젊음에 기쁨을 느꼈다. 그리고 그런 순간을 뒤로하고 3일째되는날, 동엽과 헤어져 최종목적지인 영덕 부모님댁으로 돌아갔다. 서울에서 영덕으로 직행으로 간 순간보다, 이렇게 혼자생각하고 친구를 만나고 돌아가는 이 시간이 더 짧아보이는 것은 왜 그런것일까? 이틀간의 짧은 일정속에서 시간은 정말 버스안의 시간보다 더 짧고 더 재미났다.

그렇게 잠시나마의 나만의 방황기?를 뒤로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 어머니는 내가 무엇을 했는지 어떻게 사는지 정확히는 모르신다. 그러나 언제나 나는 아들이고 철부지인 느낌으로 부모님을 만나러간다. 항상 그래왔듯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부모님을 만난다. 언제나 걱정이 없냐며 물으시면 "괜찮아요" 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그런 언제나가 지금도 그런다. 하지만 되돌아간 이틀간의 여행속에서 지난날을 뒤돌아보며 맞이하는 괜찮아요는 다른다. 모양과 형태와 소리가 같더라도 분명 무언가 변하는 순간을 느낀다. 사람이란 그런 변화들이 축적된 기억의 동물이 아닐까? 나는 무언가 계발을 하기보다는 이런 과거들을 다시 주워담는 노력을 하는 사람이 되고싶다.

마티스의 오세아니아는 어쩌면 그런 기억의 조각이 아니었을까?